(빅퍼즐 문화연구소 소장)

어느 날 지인이 물었다. 도대체 빅퍼즐 문화연구소 영화클럽에 어떤 사람들이 오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일반 사람들이 온다고 했더니 그는 더욱 의아해했다. 영화클럽을 인도하는 내가 영화 권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타가 인정하는 영화 평론가가 인도하는 모임도 아닌데 사람들이 찾아오는 게 이상했던 것이다. 이 질문은 우리가 직면해 있는 배움에 대한 새로운 환경과 흐름을 직면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의 인문학 강좌는 레드오션이다. 무언가 번뜩이고 신선한 강좌를 열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은 지나갔다. 팟캐스트 무료 인문학 방송, 각종 아카데미, 유튜브를 통한 최신 대학 강좌까지 인터넷을 조금만 뒤지면 쉽게 알짜배기 강좌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과 정보의 민주화는 특정 장소에 가야만 인문학을 배울 수 있는 시대를 종식 시켰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프라인에서 모여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온라인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 아니 하기 어려운 것이어야 매력이 발생할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빅퍼즐 문화연구소 영화클럽을 통해 느낀 것은 현장에서 만나 공유되는 이야기, 텍스트에 대한 개인의 해석 그리고 공동체적 의미 만들기였다.

사람들이 영화클럽을 찾아온 것은 강도영의 강좌를 듣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자신들이 본 영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었다. 사람들은 먼저 자신이 보고 또 읽어낸 텍스트가 무슨 의미인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타인의 공감을 끌어내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권위를 부여받은 선생이 앞에 서서 문제와 정답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배웠지만, 이제는 그런 스타일의 선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선생의 핵심 역할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선생이 가지고 있는 지식만큼 아니 더 많은 지식을 학생들이 확보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활용 능력에 따라 지식 접근의 역전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선생의 위치에 변화를 준다. 과거에는 선생이 중앙에서 지식을 통제하며 가르쳤다면 이제는 학생들이 앞에 있는 선생만을 바라보는 구조가 사라지고 있다. 선생과 학생이 함께 원탁에 서로를 둘러보며 앉는다. 한 사람의 선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의견이 있는 모두가 서로에게 선생이 되었고 학생이 되었다.

영화클럽을 통해 함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은 쉽지 않았다. 텍스트에 대한 해석이 다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모임에 참여한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관점이 등장했고 그러다 보면 불가피하게 의견의 충돌이 발생했다. 우린 아직도 내 의견에 대한 다른 의견을 불편해할 때가 많다. 그저 다른 의견일 뿐인데 서로가 말한 것을 틀렸다고 말하면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바로 그때 선생이 필요하다. 선생은 자신이 독점한 정보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각자가 소화한 텍스트를 수집할 때 나오는 다양한 이견을 조율하는 역할이다. 그것이 영화클럽을 인도하는 나의 역할이기도 하다. 지난 3년의 세월을 돌아보면 불편하기도 한 의견들의 대립이 날카로운 인사이트를 낳기도 했고 또한 이런 과정의 반복이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근육을 단련해주기도 했다.

영화클럽은 전문가만 할 수 있는 모임이 아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과 사람들이 함께 모여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누구나 열 수 있는 모임이다. 빅퍼즐에서 모임을 시작하기 전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영화는 언제나 함께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혼자 보고 느끼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이다. 빅퍼즐의 경험을 비춰볼 때 이 말은 언제나 진리인 것 같다. 개인이 영화를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도 좋지만 의미를 발생시키는 과정 자체가 공동체적인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함께 모여 성경을 공부하고 해석하며 의미를 발생시키는 교회는 공동체 영화보기를 경험할 수 있는 최적의 모임이 아닐까 싶다. 이제 영화의 계절 여름이다. 혼자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함께 더 풍성한 영화 보기의 세상을 누리길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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