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요점보다 하나의 중심 메시지에 집중하라

‘하나의 사상단위가 있는 본문’ 선택이 중요 … 주제가 될 만한 적당한 단어 중심의 내용 나열은 잘못

 

류응렬 목사 ●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 고든콘웰신학교 객원교수● 전 총신대 교수
류응렬 목사 ●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 고든콘웰신학교 객원교수● 전 총신대 교수

지금부터는 ‘열단계 설교작성법’이란 이름으로 본문 선택에서 시작하여 묵상과 주해 과정, 그리고 구체적인 설교작성에 대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열단계로 설교작성이란 시간의 순서보다 논리적 순서라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보는 것의 영성’이란 제목의 방송설교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설교자는 인류의 조상이 보는 것 때문에 최초의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고, 다윗이 보는 것 때문에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사람에게 눈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강조했습니다. 적용도 매우 실제적이었습니다. 특히 남성들은 백화점이나 거리를 다니면서 다른 여성들을 보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며, 보는 것이 우리를 범죄로 인도하는 지름길이라 지적했습니다.

설교 본문은 마태복음 5장 1절,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였습니다. 아무리 성실하게 준비한 감동적인 설교라 할지라도 성경 본문이 말씀하는 것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감동적이라 해도 성경적인 설교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설교자가 강단에 설 때 전해야 할 유일한 말씀은 하나님이 의도한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는 확신이 있을 때 설교자는 말씀선포에 생명을 겁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많은 강단은 이와 같은 ‘제목설교(topical preaching)’가 주를 이룹니다. 제목설교란 본문이 말하는 것을 정직하게 해석하지 않고 본문에서 나오는 단어를 하나 택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리해 가는 설교입니다. 이런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권위가 아닙니다. 설교자의 논리와 감동적인 이야기 그리고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화술에 따라 좌우되는 설교입니다. 이런 현상은 설교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시작은 잘못된 본문 선택에 있습니다. 성경적인 강해설교란 성경본문에 나타난 저자의 의도를 바르게 파악하여 오늘날 청중에게 적실하게 적용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선택은 설교에서 첫 단추와도 같습니다. 잘못 끼우면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됩니다. 효과적인 본문 선택을 위해 먼저 어떤 철학에 근거하여 본문을 선택할 것이지 다루고, 본문 선택에서 유의점과 다양한 방법을 알아보려 합니다.

하나의 사상 단위가 있는 본문

본문 선택의 범위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하나의 사상단위가 있는 본문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하나의 중요한 사상 또는 주제를 가진 본문의 단위를 ‘강해단위(expository unit)’라고 부릅니다. 설교본문으로 선정하기 위해서는 그 문장이나 단락이 하나의 주제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설교란 하나의 본문에서 하나의 중심 사상을 찾아내어 본문과 성경 전체의 시각으로 해설하고 오늘날의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통일성을 지닌 본문을 위해 어느 정도의 길이가 적당할까요? 중요한 것은 문단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그 본문이 하나의 중심사상을 담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내러티브 형식으로 된 긴 본문도 하나의 설교가 가능하고, 잠언처럼 한 절로 된 본문에서도 하나의 주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의 내러티브 형식으로 된 본문을 설교할 때는 한 사건의 시작과 전개 그리고 결말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예를 들어, 다니엘 3장을 설교할 때는 전체가 하나의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몇 절을 떼어내어 설교하기란 어렵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순교적 신앙을 보여주는 다니엘 3장 전체를 하나의 본문으로 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다니엘 3장을 설교할 때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 소개된 8~18절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본 장의 배경으로 1~7절을 간단히 소개하고, 이 사건의 결말을 위해 19~30절을 언급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비록 하나의 중요한 주제가 들어있는 본문을 택하더라도 그 본문을 둘러싼 여러 장을 동시에 살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사무엘하 11장에 나타난 다윗의 범죄는 11장 전체 속에서 다룰 때 가능하며, 12장에서 나단이 다윗을 대하는 본문도 11장에 근거하여 설교해야 이해가 가능합니다. 사무엘하 12장 1~6절을 본문으로 택하더라도 11장과의 연관 속에서 본문을 풀어가야 합니다.

본문의 앞뒤 상황뿐 아니라 성경의 각 권 전체 혹은 나아가 성경전체를 이해할 필요도 있습니다. 룻기나 욥기의 세 친구들과 엘리후의 대화를 설교할 때는 그 책 전체의 배경 속에서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곤고한 룻의 삶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인애는 룻기 전체를 한눈으로 볼 때 확연히 드러납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욥기 8장 7절의 말씀을 독립적으로 설교하면 반드시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것도 아니고 신앙에 투철한 사람이 한 말도 아닙니다. 욥의 고난을 잘못 이해한 빌닷이 욥을 훈계하면서 들려주는 말입니다. 이 말 자체는 매우 은혜로운 말이지만 이 자체로만 설교하게 되면 상황을 벗어난 해석에 불과합니다.

한 가지의 주제를 집중적으로 설명하려 할 때 성경 전체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4장 17절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를 설교할 때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성경 전체의 흐름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설교하거나, ‘약속과 성취’ 또는 ‘구약의 메시아’ 등을 설교할 때도 성경 전체에서 이 주제에 관한 통찰력을 필요로 합니다. 이 주제를 잘 드러내는 본문에 근거하여 그 주제가 성경 전체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필 때 청중은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그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게 됩니다.

한 절이라도 하나의 중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본문 선택이 가능합니다. 잠언 16장 1절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는 짧지만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잠언 16장 33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긴 구절에서 하나의 핵심만을 끌어내는 방법이나, 한 구절의 의미를 보다 길게 설명하는 것 모두 정당한 설교법이라 할 수 있다.

본문 선택에서 유의할 점

본문선택에서 두 가지 조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의 주제가 들어있지 않은 본문을 선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목설교처럼 주제가 될 만한 적당한 단어가 나오는 본문을 정해놓고 그 단어를 중심으로 성경적인 이야기든 일반적인 내용들을 나열하는 것은 잘못된 설교입니다. 열왕기상 17장 8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라는 구절을 설교 본문으로 삼아 이런 형태로 제목설교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제목:말씀하시는 하나님
1대지: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2대지: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3대지:하나님은 상황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이런 설교의 문제는 내용 자체가 비성경적인 것이 아니라 설교 내용이 본문에 근거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열왕기상 17장 17절을 택하여 설교할 때도 마찬가집니다.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이 본문은 사르밧 과부를 만난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이 보여주신 놀라운 승리의 역사 다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여주인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을 두고 ‘승리 후에 오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는 것은 본문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일이 아닙니다.

로이드 존스는 본문에서 설교자가 취해야 할 정직함에 대하여 이렇게 지적합니다. “여러분이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본문의 의미를 다루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한 가지 황금률이 있다. 정직해야 한다. 주어진 본문에 정직해야 한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나의 관심사나 내 생각을 다룰만한 하나의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본문을 택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설교자는 본문을 전하기 위해 강단에 세워진 사람이지, 자신의 연구나 사상을 펼치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설교자는 본문이 말씀하지 않는 것을 자의적으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설교자란 스스로 빛을 발하는 태양이 아니라 태양의 빛을 받아 반사해야 할 달입니다.

둘째, 너무 많은 요점을 한 설교에서 제시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본문은 보는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 중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설교자는 본문에서 말하는 가장 중심 되는 한 가지 메시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다른 내용들은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보조 주제로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다양한 말을 하더라도 한 가지 주제를 일관되게 전하는 것이 좋은 설교의 요건입니다. 설교의 실패는 내용이 적어서가 아니라 한 가지의 내용을 통일적으로 설교하지 못한 데서 비롯됩니다.

에베소서 1장 3~14절은 헬라어로는 한 문장으로 된 본문입니다. 바울이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주신 하늘에 속한 복을 감동적으로 찬양하는 본문입니다. 이 본문에는 선택, 거룩, 예정, 양자, 은혜, 구속, 하나님의 경륜, 통일, 기업, 인치심, 보증,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등 다양한 주제가 등장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한 설교에 다룬 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효과적이지도 못합니다. 본문은 이런 다양한 교리들을 소개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베푼 축복의 여러 모습을 다양한 측면에서 소개하는 본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에게 신령한 복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라는 주제와 연결해서 축복의 다양한 면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성경적 강해설교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본문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설교란 설교자가 임의로 본문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이 말씀하는 것을 정직하게 파악하여 청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본문 선택은 설교자의 몫입니다. 본문을 차례대로 연속설교를 하든, 한 주제를 가지고 시리즈로 설교하든, 혹 성경을 묵상하다가 하나님이 주신 본문을 택하는 것도 모두 가능합니다. 일단 본문을 정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본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설교자는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입니다. 대언자는 보내신 분의 의도를 충직하게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권위는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부르시고 세우신 분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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