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지의 3·1정신, 한국교회 새로운 도전 계기로 만들자
3·1운동은 교회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 지 분명히 알려 … 민족 통합의 구심점 역할 진력해야

 

<기독신문>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태극기 삼천리 만세강산’을 주제로 지난 1월부터 역사기획을 연재했다.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하겠다는 취지로, 국내외 현장 취재, 설문조사, 인터뷰, 기고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기획의 마지막 편으로 교계의 존경을 받는 원로이며 전문가인 장차남 목사(증경총회장), 김길성 교수(총신대신대원 명예), 이상규 교수(백석대 석좌)의 대담을 통해, 3·1운동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 교회가 노력해야 할 바를 들어봤다.<편집자 주>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보내는 소감을 딱 한 단어로 표현하신다면?

장차남 목사(이하 장 목사) : 3·1운동은 한일합방 이후 10여 년 만에 생긴 일로서 독립염원이 모아졌고 임시정부가 태동한 계기가 된 거사라고 생각한다.

김길성 교수(이하 김 교수) : 3·1운동은 거국적 자주독립의 시발점이며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 역사적인 기회였다.

이상규 교수(이하 이 교수) :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3·1운동에 대한 논문과 책들이 나왔지만 아직 부족하다. 기본적인 관련 통계가 통일되어 있지 않았고 편차가 컸다. 100년 전 당시 기독교인 1% 내외였음에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으나 오늘날 20%의 교세를 가지고 있어도 영향력은 그만 못해서 안타깝다.

▲3·1운동이 한국근대사 및 한국교회사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에 대해 설명해 달라.

김 교수 :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탄생시켰으며, 비폭력운동의 효시가 되었고, 전 세계에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선언한 의미가 있다.

이 교수 : 근대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그 의미를 말할 때 4가지 정도다. 거족적운동인 동시에 자유 평등 민족 독립의 의지를 보여줬다. 일제 가혹한 통치 실상을 노출시켜줬다. 독립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세계 사람들에게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천명했다.

장 목사 : 왕정 복구가 아니라 민주공화정을 추구했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는 민주공화정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국정부 체제를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3·1운동이 좌절된 이후 교회는 음성적으로 독립운동에 간여했고 부흥에 힘썼다.

3·1운동이란 자랑스런 유산을 되살려 한국교회가 회복되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이상규 교수, 장차남 목사, 김길성 교수(왼쪽부터)가 본지 3·1운동 역사기획 대담에서 교회가 내적으로 성경적 신앙으로 돌아가고 서로 연합하여 통일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관심사에 이정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누고 있다.
3·1운동이란 자랑스런 유산을 되살려 한국교회가 회복되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이상규 교수, 장차남 목사, 김길성 교수(왼쪽부터)가 본지 3·1운동 역사기획 대담에서 교회가 내적으로 성경적 신앙으로 돌아가고 서로 연합하여 통일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관심사에 이정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누고 있다.

▲100년 전 3·1운동 당시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할 때 한국교회의 역할과 위상에 있어서 결정적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시는가?

이 교수 : 당시 기독교 신도는 20만 명, 많아야 1.5% 정도였지만 국민들의 신뢰를 받았다. 일본총독부조차 이 땅에서 한국백성들이 기댈 곳은 교회뿐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교회의 숫자는 적어도 교회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대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상조차 발견하지 못해 자중지란이 일어나고 있다.

장차남 목사(증경총회장)
장차남 목사(증경총회장)

장 목사 : 당시 천도교는 300만명이었다. 그런데 3·1운동에 동원된 인원은 기독교가 제일 많았다. 피해도 가장 많이 봤다. 3·1운동을 주도한 단체는 천도교 불교 기독교라고 하지만, 기독교가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교회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성해야 한다.

김 교수 : 3·1운동 당시 교회는 자긍심을 가졌고 민족과 사회 앞에서 책임의식을 가졌으나 오늘날 많이 약화됐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서 <기독신문>과 총회역사위원회가 실시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한국교회의 사회적 공헌도나 주도적 능력이 오히려 예전보다 약해졌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장 목사 : 한국교회가 3·1운동정신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고 있다. 3·1운동 당시에 보여주었던 진지함 그리고 정말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성을 보일 때 한국교회는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데 관심을 쏟을 때가 아니라 대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김 교수 : 교회의 영향력이 약화된 것은 개교회주의 때문이다. 개교회주의를 극복하고 민족복음화를 위한 사명의식을 회복하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교수 : 설문결과에 공감한다. 그 당시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리더십이 있었다. 또 민족적 과제를 수행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지금 기독교는 천박해졌다. 민족적 책임이 약해지고 개인이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는 것이 축복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래서야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이번 의식조사 결과에서 눈에 띄는 다른 부분들이 있었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란다.

장 목사 : 3·1운동 100주년이나 임시정부를 논할 때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을 빼고 있다. 이런 것은 합당하지 않다. 올바른 입장에서 세워줄 것은 세워줘야 한다. 초대 대통령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의 뿌리가 온전하겠는가? 역사는 공정하게 취급되어야 하고 한편에 치우치면 안 된다.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곳은 교회뿐이다. 3·1운동이 비폭력 무저항주의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3·1운동 7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고, 양국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독립운동가 김원봉을 영화에 등장시키고 국민훈장을 추서한다고 하는데 이런 일은 문제가 있다. 특히 3·1운동이 무저항 비폭력주의를 바탕에 두었다는 점을 기억할 때도 좋지 않다. 아울러 민족적 거사는 종교를 초월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나 민족적 차원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종교와 종파를 초월해서 협력해야 한다.

이 교수 : 놀랐던 것이 3·1운동에 기독교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모르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던 점이다. 기독교의 피해 상황은 더더욱 몰랐다. 이것을 보면 기독교의 대국민 홍보 기능이 매우 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3·1운동뿐만 아니라 이후 한국사회 여러 영역에서 기독교가 한 일을 제대로 조명해야 한다. 3·1운동은 종교를 초월하여 공동으로 직면한 문제에는 협력할 수 있음을 가르쳐줬다. 우리의 신앙과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고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은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3·1운동 정신은 어떻게 다시 구현되어야 할까?

장 목사 : 3·1운동은 민족운동이고 민주운동이고 평화운동이고 그리고 개혁운동이다. 한국 국민 전체를 하나로 묶은 민족운동이었고, 민주정부를 지향했던 민주운동이었다 비폭력 평화운동이었다. 3·1운동 정신을 구현하여 통일운동으로 승화시켜 나가야 하며, 통일운동으로 관심을 모을 때 한국교회는 개혁되는 계기를 얻을 것이다. 교회의 힘을 내적 성장에만 집중하지 말고 통일운동으로 분출해야 한다.

김길성 교수(총신신대원 명예)
김길성 교수(총신신대원 명예)

김 교수 : 3·1운동이 가지고 있는 자유를 향한 정신과 민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오늘을 사는 기독교인들이 기억해야 한다.

이 교수 : 3·1운동 정신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일이 먼저 필요하다. 대개 학계에서 4가지로 말하는데 자주독립, 민주, 애국, 비폭력이다. 또 독립 자유 민주 세 가지로 정리하기도 한다. 이를 구현하는 일 가운데 중요한 것이 북한인권운동을 하는 일이다. 북한에는 독립, 자유, 민주주의가 없다. 북한 인권운동은 일종의 노예해방운동이다. 북한은 3·1운동을 싫어한다. 3·1운동은 실패한 운동이라고 취급한다. 체제 유지에 반대되는 독립운동이었기 때문이다. 3·1운동 정신 계승의 중요한 차원은 북한인권을 위해서 노력하는 일이다.

▲3·1운동 정신의 계승자로서 한국교회가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최대 숙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김 교수 : 한국교회가 약화된 원인은 신뢰를 상실했고 이단들이 준동하는 것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교회의 연합이다. 연합의 자리에서 대화도 하고 함께 일을 해야 이단도 막고, 통일운동도 할 수 있다.

이 교수 : 4세기 이전의 기독교회는 ‘나그네적 공동체’라고 불렸다. 그 이후 ‘안주 공동체’로 바뀌었다. 권력이 생겼고 교회가 부패했다. 한국교회 역시 본래의 기독교로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돈 권력 명예에서 자유함을 얻어야 한다.

장 목사 : 성경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렇게 방만하고 무작위적으로 흩어져 있는 한국교회를 모을 방도가 안 보인다. 성경신앙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아무리 교세가 커진다고 해도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통일운동과 더불어 북한인권문제를 도외시 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인권문제를 놔두고 남북이 현 체제를 인정하고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 선에서 관여하지 않겠다는 정도라면 이는 3·1운동 정신과 너무 거리가 멀다.

▲마무리 말씀을 부탁드린다.

김 교수 : 과거를 기억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교회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3·1운동 정신을 거듭 기억해야 한다.

이상규 교수(백석대 석좌)
이상규 교수(백석대 석좌)

이 교수 : 3·1운동에서 빠뜨릴 수 없는 성과가 여성들의 사회화였다. 3·1운동에 수많은 여성들이 앞장섰고 이후 여성단체들이 조직되었다. 또 3·1운동 이후 취학률이 급증했다. 자유와 독립을 경험하니 백정해방운동이 시작됐다. 3·1운동과 관련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의미 있는 사건들이 매우 많다.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기만 해도 교회가 새로운 도전을 받을 것이다.

장 목사 : 3·1운동에 여성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참여와 희생이 컸다. 그들은 거의 기독교 학교 출신들이었다. 요즘은 학교가 많아졌지만 세속화되어 기독교 교육을 시킬 수 없다. 과연 이것이 국가에 도움이 될까? 기독교 정신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고 기독교정신을 교육하는 대안교육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다음세대에 3·1운동 정신을 바로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 교회는 민족 민주 평화 개혁 등의 정신으로 다시 일어나 우리 사회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 3·1운동 정신으로 교회가 민족 통합의 구심점 역할을 할 내일을 기대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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