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훌륭한 정치인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 이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어록에 나와 있는 유명한 문장이다. 정치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공공의 이익에 맞게 실현시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정치인은 다양한 사회 현안에 대한 치밀한 고민과 사변적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문제의 본질에 대한 직관과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사변적, 철학적 문제의식이 지나치다보면 탁상공론에 빠지거나 관념적, 이념적인 논쟁에 빠져 소모적인 갈등만 일으킬 소지가 있다. 반대로 너무 상인의 현실감각만을 앞세우다 보면 사상과 철학이 없는 저속한 장사치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목회자 역시 먼저 서생적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나는 한때 성장주의와 물량주의에 갇혀서 산 사람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 교회 하나만 부흥하고 성장한다고 뭐가 달라지는가? 오히려 대형교회가 욕을 먹고 비난을 받고 있지 않는가?” 이런 의문을 던지면서 점점 눈이 열리고 한국교회를 향한 서생적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왜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왜 한국교회는 계속 다투고 분열할까. 왜 사회로부터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을까.”

이런 질문과 함께 상인의 현실감각을 가지고 한국교회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공적 사역과 연합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최초로 이슬람 확산의 위급성과 대책 마련을 문제제기하면서 이슬람의 전교화 전략을 원천적으로 막았고 수쿠크법도 정부, 국회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최전면에서 막을 수 있었다. 동성애 차별금지법, 종교인 과세 문제 등에 대해 때로는 정부와 각을 지고 때로는 설득을 하면서 지혜롭게 대처해 왔다.

그런데 경험적으로 볼 때 서생적 문제의식에만 치우치면 자칫 나 자신만이 의로워지고 사고가 현실 도피적이며 우울한 피안의 세계에 갇힐 수 있다. 설교 역시 사변적이고 비판적인 경향으로 기울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상인의 현실감각만 가지다 보면 약삭빠르고 기회주의적인 정치꾼이 될 수 있다.

우리 교단 내부를 봐도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상인의 현실감각만 강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을 소위 정치꾼이라고 한다. 거래도 잘하고 흥정도 잘하면서 비즈니스 마인드로 사람을 대한다. 처음에는 매력이 있는 것 같지만 몇 번 보면 “사람을 이용의 대상으로 삼는구나, 비즈니스 마인드로만 사람을 대하고 진정성이 없이 잇속 빠르게만 처세를 하는 사람이구나”하는 것을 금방 눈치 채게 된다.

서생적 문제의식 속에는 숭고한 이상과 철학과 비전이 있다. 내면적, 정신적 가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신의를 중시하고 사람을 이용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러나 자칫하면 탁상공론에 치우칠 수 있고 이상주의에만 머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생적 문제의식과 동시에 상인의 현실적 감각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먼저 서생적 문제의식부터 갖는다. 답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답이 없는 것이 답일 수도 있다. 그래서 계속 답이 없는 답을 찾아 걸어간다. 그러다보면 내가 걸어간 길이 답이 되는 것이다. 우리 총회의 오피니언 리더나 영향력을 발휘하며 이끌어가는 지도자들도 먼저 서생적 문제의식을 갖고 동시에 상인의 현실감각을 가지고 교단을 이끌어 가면 좋겠다.

총회를 섬기다보면 어찌 정치적 판단이나 행보를 할 수 없겠는가. 그러나 너무 정치 쪽으로만 가면 상인의 현실감각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을 이용만 하고 버리고 또 다른 갈등을 유발시킨다. 반대로 너무 이상적, 관념적으로만 가면 서생적 문제의식 밖에 없게 된다. 그러니까 현실에 대한 푸념만 할 뿐이지 급변하는 시대변화에 창조적이고 현실적 대응을 하지 못하고 무력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문화적 대변혁기를 맞고 있다. 프랑스 역사학자인 페르낭 브로델은 역사를 세 단계로 보았다. 먼저는 국면사이고 그 다음은 구조사이며 그 구조사들이 모여 마침내 1000~2000년 만에 맞을 수 있는 문화사적 대변혁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의 예견대로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는 문화사적 대변혁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 지금 국가도 기업도 모두 흥망의 기로에 서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우리 교단은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지금처럼 계속해서 물량주의나 교권주의에 함몰되어 있으면 안 된다. 더구나 우리끼리 관념적 다툼과 갈등을 지속한다면 더 이상 우리 총회의 희망은 없을 것이다. 이제라도 서생적 문제의식만 가득한 사람은 상인의 현실감각을 갖자. 반면에 상인의 현실감각만 가지고 지나치게 정치적인 사람은 서생적 문제의식을 갖자. 그래서 서생과 상인이 함께 공존하는 교단을 이루자. 본질과 실용이 입 맞추고 포옹하는 총회를 이루자. 그렇게 해서 우리 총회가 무너져 가는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는 견인차요, 퍼스트 리더가 되자. 우리 교단이 길 막힌 한국교회에 다시 길을 내자.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