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행동 아트리 대표〉

지난 칼럼에서 한국공연의 모태라 할 수 있는 대학로에는 크고 작은 170여 개의 극장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 170여 개 극장들 중에, 자체 브랜드 파워를 가진 극장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대학로가 형성되기 전부터 서울에는 색깔이 분명한 소극장들이, 나름의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었더랬죠. <칠수와 만수>라는 대표작을 장기 공연했던 ‘연우 소극장’은 민중의 삶을 조명하는 창작극만을 고집했습니다. 시대적 고민을 담은 작품을 찾는 관객들이 사랑하는 극장이었죠. ‘산울림 소극장’은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부조리극을 장기공연하면서, 문학에 조예가 깊은 식자층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삼일로 창고극장’은 배우들이 직접 힘을 모아 창고를 개조해 만든 극장답게 배우 중심의 공연들을 올렸습니다. 추송웅 선생님의 <빨간 피터의 고백> 같은 작품들이죠. 배우들이 자발적으로 뿜어내는 에너지를 받고 싶은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던 극장이었습니다.

1975년 개관 이래 소극장 운동을 이끌었던 삼일로 창고극장은 현재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어 시민과 관객, 그리고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개방되고 있다.(사진 출처=삼일로 창고극장 홈페이지)
1975년 개관 이래 소극장 운동을 이끌었던 삼일로 창고극장은 현재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어 시민과 관객, 그리고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개방되고 있다.(사진 출처=삼일로 창고극장 홈페이지)

‘실험극장’은 <에쿠우스> <신의 아그네스>와 같은 작품들을 과감하게 공연해 당시 한국사회에서는 금기시했던 문제들을 다루었습니다. 실험성 짙은 작품들을 보려는 관객층을 형성했던 극장이지요. 실험극장의 흐름을 이어받은 극장이 바로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로, 이 극장은 일정기간이 지나면 계속해서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독특한 체계를 가지고 혜화로터리 한편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새벽이슬>로 유명한 김민기 선생님의 숨결이 담긴 공연 <지하철 1호선>을 보고 싶을 땐 ‘학전블루 소극장’으로, 한양대 연극과 출신들의 재기발랄하고 참신한 작품들을 보려면, ‘한양레퍼토리씨어터’로 가면 됐습니다.

위에 열거한 극장들은 작품으로 유명해졌다기보다는, 극장의 브랜드 정신을 지키기 위해 작품을 올려 사랑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브랜드 이미지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있습니다. ‘극장 브랜드의 실종’이 어쩌면 지금 대학로가 겪고 있는 총체적 어려움들의 주된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극장 브랜드가 분명했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한국교회를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의 브랜드 파워는 어디에서 와야 할까요?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사도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녔다고 말합니다. ‘흔적’이란 헬라어로 ‘스티그마’인데, 영어로 옮기면 브랜드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생길 수밖에 없는 고난의 자국들이 바로 예수 브랜드라는 것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젊은 권사님 한 분이 지금 이 땅에서 마지막 호흡을 하고 계십니다. 복음을 생명으로 받으신 후, 한결같은 믿음으로 두 아들을 선교사로 길러낸 믿음의 삶이었습니다. 주님을 위해 사는 이들이 이 땅에서 겪는 알 수 없는 모든 고초와 병고 역시 예수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와 한국기독교문화사역자들에게 이 ‘예수 브랜드’가 더욱 또렷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다음세대에게 한국 기독교 문화예술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는 ‘예수 브랜드’ 분명한 좋은 극장이 하나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5월 가정의 달, 온가족이 함께 대학로 나들이 한 번 하시길 바랍니다. 대학로에서 관영이가 보냅니다. 주안에서 모두 강건하시길.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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