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께 이끌리는 설교가 영혼을 변화시킵니다

설교자에게 영성과 경건은 수단이 아닌 필수 … 거룩한 진리의 빛을 드러내는 사명자의 삶이 돼야

류응렬 목사 ●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 고든콘웰신학교 객원교수● 전 총신대 교수
류응렬 목사 ●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 고든콘웰신학교 객원교수● 전 총신대 교수

영성 있는 설교자가 어느 때보다 시급한 때입니다. 설교자의 영성이 살아나야 설교가 살아납니다. 설교자의 영성이 회복되어야 교회가 살아납니다. 두 눈에 하늘을 담고, 가슴에는 영혼을 향한 목자의 사랑을 품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강단으로 오르는 설교자. 이런 설교자가 강단을 채울 때 한국교회는 말씀과 성령으로 말미암은 진정한 부흥을 경험할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설교사역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노라”(고전 2:4~5)

바울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체험한 배경에는 바울의 학식이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성령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거룩한 사명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뛰어난 학문이나 화술이 아니라 설교를 통해 성령이 역사하실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설교자에게 영성이란 생명과도 같습니다. 영성 없이 강단에 서는 것은 무기 없이 전장에 나가는 어리석은 병사와 같습니다. 영성의 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을 닮고 그 분의 발자취를 따라가고자 발버둥을 치는 사람입니다. 칼빈은 강단에 오를 때마다 “설교자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따르지 않는다면 강단에 오르면서 목이 부러지는 것이 낫다”고 읊조리며 오르곤 했습니다. 설교자는 뛰어난 학적 재능과 언어도 필요로 하지만 영성을 능가할 무기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설교자가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요소

설교자로서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덕목이 있습니다. 필자는 이를 ‘4력’이라 부릅니다. ‘영력’ ‘실력’ ‘언력’ ‘체력’입니다.

설교자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첫 덕목은 ‘실력(實力)’입니다. 두 가지 실력이 필요합니다. 성경을 통찰력 있게 이해하는 실력과 사람과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눈입니다. 설교자란 기본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미시적인 눈으로 본문을 이해할 뿐 아니라 거시적인 안목으로 성경 전체를 통찰하는 실력도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바르게 깨달아도 사람과 시대를 파악하지 못해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는 설교자도 있습니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폭 넓은 인문학과 교양 및 상식을 필요로 합니다.

둘째는 ‘언력(言力)’입니다. 언어는 설교자가 진리를 전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따라서 설교자는 간결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심령을 움직이는 표현이 있는가 하면, 허공으로 사라지는 말도 있습니다. 막연한 말로 잠재우는 언어가 있는가 하면, 실감나게 보여줌으로써 영혼을 깨우는 언어가 있습니다.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말은 피해야 합니다. 군더더기나 반복적인 말은 설교의 적입니다. 가장 적절한 한 단어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 그가 진정한 설교자입니다.

셋째는 ‘체력(體力)’입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영성이 깃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설교자는 강단에 설 때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합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통로가 될 뿐 아니라 균형 잡힌 삶의 본으로 청중에게 나타나야 합니다. 기도가 영혼의 힘을 얻는 산실이라면, 운동은 육신의 힘의 얻는 산실입니다.

필자가 강조하는 마지막 요소는 ‘영력(靈力)’입니다. 영성이란 한 마디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과 영혼을 깊이 품는 목자의 심정,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것처럼 그의 삶의 자취를 따라가는 삶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을 진실로 신뢰하고 생명 바쳐 따라간다는 말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사랑하셔서 생명을 주신 이 땅의 영혼들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 자체가 영성의 모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영성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닮음’이 영성의 핵심입니다.

성경적인 설교

성경적인 설교란 주어진 본문을 통해 예수님이 전하실 말씀을 대신 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중심 주제를 바르게 파악하여 오늘의 삶으로 적실하게 적용하여 청중의 삶에 거룩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앞에 언제나 민감하게 깨어있는 설교자의 삶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가 된다고 영성이 따라오는 것이 아닙니다. 연륜이 깊어질수록 영성이 더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을 끊임없이 부인하고 우리 속에 거룩한 주님의 역사가 새롭게 일어나도록 자신을 드리는 훈련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영성 훈련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나를 통하여 적극적으로 살아나실 때 비로소 우리를 통해 주님의 거룩한 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떤 설교가 영혼을 움직이는 설교일까요? 청중을 변화시키는 영성 있는 설교를 위한 네 가지 과제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①성령이 역사하는 설교

영성 있는 설교의 첫 비결은 성령님께 이끌리는 설교라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언변과 학식과 논리와 환경을 갖출지라도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우리의 말은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는 있지만 영혼의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설교란 하나님이 친히 전하실 말씀을 대언하는 일입니다. 오직 주님의 성령만이 밝히 깨달아 알 수 있는 말씀을 대신 전하는 사역이라면 우리의 모든 설교를 통해 주님의 성령이 나타나셔야 효과적인 변화가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해석되고 선포될 때 주님의 성령은 영혼을 바꾸는 역사를 일으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깨어있는 영성가는 자신의 설교에서 성령님이 흘러나오시도록 간구하는 사람입니다. 연약한 질그릇 같은 자신의 존재를 알기에 주님 앞에 철저하게 무릎 꿇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설교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펼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좇아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기를 열망합니다.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는 것이 성령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비록 사람의 입술을 통해 나타나는 설교일지라도 성령님께 이끌리는 설교일 때 영혼이 변화됩니다.

②기도에 이끌리는 설교

영성 있는 설교의 두 번째 요소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영성의 산실입니다. 설교자는 주님 앞에 진심으로 무릎을 꿇을 때까지 하나님의 영에 이끌리는 설교를 할 수 없습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는 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통로입니다. 대표적 강해설교자인 켄트 휴즈는 설교 준비에 관한 중요한 책을 쓴다면 3분의 1은 기도에 관해 써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기도란 설교자에게 필요한 하나의 요소가 아니라 설교자가 추구해야 할 삶의 전부와도 같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면 알수록 설교자는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나타나실 때 설교를 통해 하나님이 친히 영혼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설교자가 말씀을 아무리 성실하게 준비한다 해도 그 제단을 태우는 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불입니다. 죽은 영혼을 살려내는 것은 인간의 열심과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설교자를 통하여 지금도 당신의 살아있는 불을 내리시길 원하십니다. 영성 있는 설교란 기도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선물입니다.

③자신에게 먼저 적용되는 설교

설교자는 말씀을 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설교자는 말씀을 해석할 뿐 아니라 해석한 말씀 앞에서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적용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설교하기만 하는 설교자의 영성은 머지않아 고갈될 것입니다. 설교가 거룩한 감격을 잃고 의무감으로 전락되기 쉽습니다. 설교자로 말씀을 전하기 전에 먼저 말씀을 듣는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서야 합니다.

필자는 이 부분이 영성을 쌓아가는 가장 중요한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설교자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깨어있는 설교자가 되는 지름길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열심은 있으나 말씀에 의하여 변화 받는 과정이 없다면 결국 설교자는 영적 궁핍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④성실한 연구가 바탕되는 설교

영성 있는 설교자라는 말과 연구하는 설교자라는 말은 상충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성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땅에 뿌리를 내리는 현실 속에서 일어납니다. 설교자는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원문에 대한 관심과 주석서와 참고자료들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파악하고 가장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해돈 로빈슨은 “오직 게으르고 어리석은 설교자만이 설교준비에 주석서 사용하는 것을 무시한다”고 지적합니다.

설교자가 연구해야 할 분야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본문의 이해를 위해 주석서와 보조자료들도 살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대와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신문과 책을 가까이 하는 일입니다. 성도들이 말씀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때로는 성경을 잘못 해석해서가 아니라 성도들의 삶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는 하늘의 소리를 땅 위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설교자에게 영성과 경건은 하나의 수단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설교자란 주해와 해석학의 세계를 오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경건이 없다면 설교자가 될 수도 없을뿐더러 결코 설교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진리의 성경 없이 설교가 불가능하듯이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망 없는 설교자에게 영혼을 바꾸는 설교를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특별한 부르심 없이 강단에 서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타오르는 사랑과 영혼을 향한 거룩한 열망을 품는 영성 있는 설교자는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자신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고자 하는 소망과 훈련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설교자는 말씀을 섬길 때마다 오늘 설교가 지상에서 하는 마지막 설교가 될 수 있다는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강단에 서야 합니다. 설교를 듣는 사람 가운데 누군가 마지막 설교가 될 수도 있다는 긴장감도 필요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찾는 마지막 영혼이 주님의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강단에 설 때마다 거룩한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드러내는 사명자의 삶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