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 목사(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하이패밀리 대표)

“베니스를 부츠 한 짝과 바꾸지 않듯이 나는 내 아내 케이트를 프랑스와도 바꾸고 싶지 않다.” 루터가 한 말이다. 독일 비텐베르크 루터 박물관에 새겨져 있다. 또 루터는 “만일 결혼이라는 것이 없다면 세상은 황폐해지고, 모든 피조물이 무로 돌아가며 하나님의 창조도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루터에게 결혼은 종교개혁의 일환이었다. 루터는 결혼을 통해 종교적 진리를 몸소 실천하고자 했다.

존 칼빈은 서양의 성(性), 결혼, 가정생활의 신학과 법을 변화시켰다. 개신교 세대의 개혁에 기반을 두고 칼빈은 교회와 국가의 본질적 관심사인 결혼과 이혼, 자녀 양육과 복지, 가족 화목과 부양, 성적(性的) 죄와 범죄에 대한 포괄적인 새 신학과 법을 구축했다. 칼빈은 개인적인 가정 분야의 개혁을 지도하고 통제하는 데 있어서 제네바의 콘시스토리움과 시의회의 새로운 창조적인 결속을 이끌어 냈다(존 위트 주니어 <The Calvin Handbook>). 종교개혁 사학사에 큰 획을 그은 베인톤(Roland Bainton) 역시 “인간 생활에서 종교개혁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 유일한 영역은 가정”이라고 강조했다.

종교개혁가들은 1세대 가정사역자였음이 틀림없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약혼과 결혼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결혼 무효 절차를 합리화하고 개방했다. 공개적인 교회에서의 결혼을 의무로 정하고, 새로운 결혼 예식을 성경의 가르침에 맞게 정비하며, 교인의 참여를 장려했다. 또 부부 재산과 상속, 결혼 지참금과 미망인의 상속에 대한 권리, 보호자와 입양에 대한 법도 개혁했다. 그들은 결혼 이전 약혼자, 침실에서의 아내, 가정에서의 자녀 등에 대하여 새로운 권리와 의무를 제시했다. 개별 가정의 복지나 행복을 넘어선 가족생태계를 바꾸는 일에까지 참여했던 셈이다.

이처럼 종교개혁가들이 피 흘리기까지 싸워 지켜내려 했던 가정은 지금 이 시대에 어떤 모습일까? 독신주의 타파는 비혼(非婚)과 1인가구의 벽 앞에 서 있다. 언약에 기반한 결혼생활은 졸혼(卒婚)이라는 해괴망측한 문화에 흔들리고 있다. 혼인과 출산장려는 인구절벽과 결혼빙하기의 거대한 쓰나미에 휩쓸려 내려갔다. 아름다운 성 생활은 동성애의 포탄을 맞고 비틀거리고 있다. 시편 기자가 말하는 ‘수고한대로 얻게 된 양식’ ‘결실한 포도나무 같은 아내’ ‘식탁에 둘러앉은 어린 감람나무 같은 자식’은 ‘저녁이 있는 삶’의 실종과 함께 보이질 않는다. ‘자식에 자식’은 언감생심이다. 

이제 교회는 가정을 파괴시키려는 이단사설들에 맞서야 한다. 구원파와 신천지에 대항하는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의 에너지만 쏟아도 좋겠다. 

교회에서 가정사역은 교회 부흥의 한 방편일 뿐이다. 5월이 다가오면 교회는 가정 관련 행사로 분주해진다. 어린이주일, 어버이 주일, 부부주일… 그러고 나면 가정은 이내 잊히고 만다. 행사를 넘어서 루틴(routine)으로 돌아설 수 없을까? ‘매번, 항상’의 일상 말이다. 설교에 가정 이야기가 배어나오고 치유의 메시지가 담길 수는 없을까? 틈나는 대로 불혹의 나이가 아닌 유혹의 나이를 살아야 하는 중년을 이야기할 수 없을까? 늙어가는 것은 신의 은총이지만 젊게 사는 것은 삶의 기술이라 한다. 삶의 기술을 익히는 노년은 또한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최근 미국 군목을 만났다. 그가 말했다. “미군의 군사력은 핵무기나 미사일에 있지 않습니다. 미국의 군사력은 가정에 있습니다.” 미군(美軍)이 가정회복 프로그램을 위해 쓰는 직접 예산만 연간 500억을 넘는다고도 했다. 그들은 근본을 볼 줄 아는 혜안이 있었다. 교회 성장은 둔화되고 안팎으로 공격을 받고 있는 가정을 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냄비가 끓다 식듯이 금방 잊혀질 가정의 달, 가정이야기가 일 년 내내 습관처럼 흐를 수 있는 그래서 ‘절기용’ 가정이 아닌 ‘일상의’ 가정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여전히 사치스러운 이야기인가? 가정사역자의 푸념이 아니길 소망해 본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