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아의 옷장 대표〉

5년 전 성신여대 앞에 ‘나니아의 옷장’이라는 기독교문화공간을 열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복음의 가치에 기반해 어떤 콘텐츠들로 이 공간을 채워나갈까. 그래서 시작된 것 중 하나가 화요책읽기 모임이었다. 처음에는 좀 자유로운 형태의 성경공부 모임으로 시작했는데 후에 크리스천을 위한 책읽기 모임으로 확대되었다.

예상치 못한 이 모임의 특별한 역할이 있었으니, 바로 차가운 도시의 현대인들이 따뜻한 저녁 한 끼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식탁공동체의 역할이었다. 누군가 퇴근이 빠른 사람이 먼저 와서 간단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다. 한 사람씩 도착하여 일을 거든다. 그렇게 7~8명이 한 테이블에 모여 밥을 먹는다.
요즘 사람들은 남녀 공히 요리를 그렇게 잘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식탁의 나눔이 너무나 풍성한 까닭에 우리가 책을 읽으려 모이는 건지 밥을 먹으러 모이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이러한 문화에 대해 멤버들의 만족도가 컸다.

‘나니아의 옷장’은 식탁의 교제를 통해서도 복음의 본질을 찾고 세상과의 접점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니아의 옷장’은 식탁의 교제를 통해서도 복음의 본질을 찾고 세상과의 접점을 만들어가고 있다.

사실 이것은 시대적 트렌드이기도 하다.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하는 ‘소셜 다이닝’이라는 개념이 5~6년 전부터 핫하다. <집밥>이라는 사이트는 직장인들이 퇴근 후 누군가의 집에 모여 간단히 밥만 함께 해먹고(서로 질척대지 않고) 헤어지는 모델을 통해 큰 호응을 얻었다.

현대인들은 외롭다. 아니, 어떤 책 제목처럼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가 더 정확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이들에게 복음이 줄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은 기계화되고 파편화 되는 현대사회에서 외로움과 목마름을 느끼게 되는 법이다. 이들에게 따뜻한 식탁의 교제를 제공한다면 그것이 복음의 본질에 가깝지 않을까.

사실 예수님도 늘 다양한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식탁의 교제를 나누셨다. 2000년 전 소셜 다이닝의 선두주자가 예수님이셨다. 유니온 신학교의 교수였던 탈 하우직이 쓴 <기독교는 식사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책에는 이 주제에 대한 구체적인 탐구를 보여준다. 그는 말한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시간을 보낸 일차적인 방식은 식사였다. 식사는 그들이 함께 배우고 가르친, 그리고 그들이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며 노래를 부른 장소였다.’

많이 알려져 있듯이 당시 문화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비스듬히 누워 느긋한 식사를 즐기는 공동체적 식사모임이 흔했다고 한다. 그러한 모임은 상당히 유연하고 열린 구조였는데 이러한 것들이 있었다고 한다. 활발한 대화, 깊이 있는 침묵, 큰 소리로 노래하기,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의 참견, 그리고 때로는 싸움의 계기. 오늘의 교회 모임의 문화는 이에 비해 상당히 경직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함께 밥상을 나눈다는 부분은 사실 국가차원의 복지제도에서도 이미 많이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자체, 문화재단 중심으로 ‘공유식탁’, ‘공유주방’ 등의 공간과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여기저기 이미 많이 운영되고 있다. 나니아의 옷장 부근에도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문화공간 <무중력지대>가 청년들이 누구나 와서 음식을 만들고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공유주방을 운영하고 있다.

교회만큼 이 일을 잘해낼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싶다. 교회에는 공간이 많고 음식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는 전문 인력(?)이 많다. 이런 부분을 사회 속에서 감당할 때 자연스러운 문화선교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1인 가구, 노인가구 등의 형태가 많아지는 한국사회에서 식탁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교회가 제공한다면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교회문화와의 접촉이 일어나고 전도의 열매도 맺힐 것이다. 열린 식탁, 초대와 환대의 식탁이 교회가 세상 속에 존재할 수 있는 중요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니아의 옷장에서는 화요일 저녁마다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설거지를 하는 일을 5년째 즐겁게 해오고 있다. 그리고 밥 먹으러 모인 김에 책도 조금씩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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