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씨(54)가 올해 사람들의 가시권안에 처음 들어온 것은 4월 22일. 15년 형기를 마친 조씨에게 다시 범죄를 저지를(재범) 우려가 있다고 내려진 10년의 보호감호가 부당하다는 소송을 내면서부터였다.


재범 가능성이 없다는 걸 입증해야 했던 조씨가 내세운 이유는 두가지. 첫째는 자신의 범죄는 「고도의 순발력」과 「민첩한 기동성」을 요구하는데 54세의 체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교도소측의 부당한 행위」에 대응하면서 얻게된 신앙을 통한 정신적 변화라고 했다. 조씨는 법원에 제출한 '재심이유서'에서 『범죄로 찌들대로 찌들어 있는 저의 병든 영혼을 (하나님께서) 고치시기 위해 그 치료 기간이 15년은 필요하셨다』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는 15년동안 겪어온 모든 고통들을 보상해 주고도 남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재판과정에서 검찰이 『죄책감을 지우기위해 어려운 사람을 도왔다는데 옳은 일이냐』고 묻자 조씨는 『성경을 읽기 위해 촛대를 훔치는 게 나쁜 일이라는 걸 교도서에서야 깨달았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나 당시 조씨는 재판의 초점을 「교도소의 가혹 행위」 고발에 두었고 여론의 관심도 그 진실여부에 쏠렸다. 그러나 7월 31일 서울형사지법에서 보호감호가 선고되면서 조씨는 다시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졌다.


그러던 지난달 26일. 항소심 공판에서 서울고법이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할 근거가 없다』며 청구를 받아들여 조씨는 마침내 석방됐다. 항소심 재판과정에서는 일부 국회의원과 시민 그리고 단체가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조씨는 출감 후 가진 첫 인터뷰에서 「대도」니 「의적」이니 하는 호칭은 자신과는 관련없는 이름이라면서 『이미 옥중에서 신앙인으로 거듭났고 앞으로 주님의 뜻에 따라 불우한 이웃을 위해 여생을 바치고 싶다』 고 말했다. 실제로 조씨의 이같은 의지는 지난 4일 경기도의 한 금식기도원에서 가진 생애 첫 간증에서도 드러났다. 조씨는 이날 간증에서 신앙을 가지게 된 동기와 체험 등을 구체적으로 고백했다(본지 12월 9일자 23면 참조).


그러나 간증에서도 많은 시간을 들여 고발했던 교도행정의 부당성 문제와 「물방울 다이아몬드의 주인이 누군가」하는 세간의 호기심, 그리고 일부 언론매체의 상업성이 묘하게 뒤섞이면서 조씨의 신앙문제는 수면위로 채 뜨기 전에 가라앉아 버렸다. 특히 몇번의 방송을 통해 제기된 조씨의 문제가 고발에만 집중되고 일부 여론이 『범죄인을 미화한다』며 반발하고 있어 조씨는 일부에서 영웅이 되고 있는 「신창원」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많아졌다.


언론의 천박한 호기심과 과거만을 되묻는 여론에 이미 휘둘린 조씨가 앞으로도 그 관심권 안에서 허덕이게 나둔다면 그가 그토록 기쁨으로 이야기했던 신앙은 「검증」의 기회를 완전히 상실해 버리고 말 것이다. 그건 한 때 죄를 지은 사람들이 회심의 기쁨을 전하는 기회조차 막는 굴절된 전례가 되기도 할 것이다. 미래를 이야기하고픈 조씨와 과거를 되묻는 여론. 그 어긋난 틈에서 조씨는 조금씩 현실감각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재 조씨는 외부와 연락을 끊고 칩거중이다.




'올해의 단체'


그 어느때보다 삭막한 겨울이 시작됐다. IMF 시대 최대 피해자인 실직자들이 모여 재기의 꿈을 키우는 곳 「다일사」(다시 일어서는 사람들).


실직자들에게 올 겨울은 그야말로 잔인하기 짝이없다. 지난 겨울 갑작스런 실직으로 인한 놀란 가슴을 쓰러내리기도 전에 어느새 두 번째 겨울이 찾아왔다.


지난해 11월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한국 경제는 곤두박질 쳤다. 하루에도 수만명의 실직자가 거리에 넘쳐났다. 그중 일부는 노숙자로 전락해 노숙자 문제는 새로운 사회문제로 부각됐다.


구세군은 대량실업이 장기화 될 것을 전망하고 올해 1월 8일 정동 다일사의 문을 열고 실직자들이 편안히 쉬면서 구직활동을 벌일 수 있는 실직자 쉼터 「다일사」를 개설했다. 정부에서조차 실업문제에 대한 뚜렷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문을 연 「다일사」는 실직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기에 충분했다.


「다일사」개소 소식이 알려지면서 실직자들이 하나 둘씩 찾아와 자신들의 고민도 상담하고 취업정보를 보면서 내일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갔다. 구세군은 이후에도 11곳의 「다일사」를 개설했다. 구세군 「다일사」 이용자만도 연인원 20만명에 달한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는 「다일사」는 이제 실직자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곳이됐다. 이들은 「다일사」에서 취업정보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웠다. 어려운 시기에 만난 만큼 어느새 서로를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오랜 친구처럼 되어버렸다.


사랑을 실천하며 인간사회의 구원을 위해 앞장서온 구세군. 올해는 실직을 고통받는 실직자들에게 작은 희망과 용기를 전했다.


「다일사」는 실직자들이 편안한 휴식을 취하면서 심리적 안정과 재충전을 통해 재취업 활동을 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원활동을 전개했다.


구세군은 『실직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이웃이 되어주며 심리적 안정을 위해 편히 쉴 곳과 구인 구직의 연계 마당을 만들어 절망하고 있는 실업자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다일사」목적을 규정했다.


IMF의 높은 파고속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실직자들에게 「다일사」는 한 줄기 작은 빛으로 다가왔다. 「다일사」는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과 같은 실직자들의 비참한 심정을 위로하고 내일을 위한 희망을 꿈꾸게 해주었다.


『삶이 힘겹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실직자들이 느끼는 삶의 무게는 다른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당장 삶의 보금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 아내나 남편의 가출로 해체되는 가정, 그것을 바라보는 실직자들의 심정은 보통사람의 생각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픔이다.


「다일사」는 실직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로자가 되기를 자처했다. 그들을 직접 찾아가 위로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찾아와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쉼터에는 각종 차와 교양잡지를 준비해 편안한 분위기에서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컵라면을 준비해 부족하지만 끼니를 해결하도록 했다. 취업정보 게시판을 마련 각종 취업정보를 제공하면서 PC 통신을 이용한 구직활동도 지원했다.


「다일사」는 이와함께 실직자들의 업무능력 향상을 위해 컴퓨터 및 영어강좌를 개설해 교육을 실시해 큰 호응을 얻었다. 개별상담과 집단상담으로 진행되는 상담을 통해 실직자의 심리적 안정도 함께 모색했다. 이밖에도 무료진료 무료이발 이용자 간담회 등 할 수 있는 지원방안은 모두 동원했다.


실직자와 함께한 1년.


『무엇보다도 실직자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제공할 수 있는 쉼터가 되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꼈어요. 「다일사」를 통해서 실직자들이 재취업에 대한 의욕이 생겨났고 이용자중 1700여명이 재취업에 성공했습니다. 「다일사」를 통해 실직으로 고통받는 이웃을 도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정동 다일사 이호영 간사는 지난 1년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 간사는 보람도 있었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이용자 대부분은 취업을 원해 「다일사」를 찾아왔지만 일자리가 부족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취업부분이 가장 취약했던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다일사」는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인간을 향한 끝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구세군은 내년에도 계속해서 「다일사」를 개설해 나갈 계획이다.


세상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 그 사랑을 묵묵히 실천하며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해온 「다일사」는 실직자들의 보금자리로,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기관으로 우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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