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균 목사(고양밀알선교단 단장)

박성균 목사(고양밀알선교단 단장)
박성균 목사(고양밀알선교단 단장)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한국교회는 ‘장애인의 날’이 있는 4월 한 주일을 선택해 ‘장애인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장애인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마음에 간직하고 예배해야 할 것에 관하여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장애는 ‘가로막을’ 장과 ‘거리낄’ 애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누군가의 앞길을 가로막는 거리끼는 사람들입니다. 그 의미를 바꿔보려고 애쓰고 있지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보니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마 22:9∼10)

공동체의 생명은 ‘하나 됨’에 있고, 연합의 핵심에는 이런 약하고 악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장애인과 같은 이들은 나쁘진 않지만 어색하거나 불편하며 잔치를 어지럽힐 것 같습니다. 이것은 즐겁고 행복한 축제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공동체의 잔치인 예배는 분명 다르게 시작되었습니다.

‘거룩’, ‘존귀’ 그리고 ‘영광’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잔치(예배)를 꾸민 것은 우리들입니다. 옛날의 임금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잔치의 격(格)에 맞춰 초대장을 보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임금의 잔치는 새롭게 초대된 길거리의 사람들로 ‘다행스럽게’ 채워졌고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2000년이 지난 현재는 어떨까요? 분명 예수님의 바람대로 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장애인 가족들을 만나 신앙생활에 관해 상담해 보면 네 가지 부류로 파악됩니다. 첫째는 장애인 부서가 있는 대형교회에 온 가족이 출석하는 가족, 둘째는 장애인은 집에 있고 부모만(대부분 어머니 홀로) 지역교회에서 예배만 드리는 가족, 셋째는 장애인 부서는 없지만 장애인과 지역교회에 함께 출석하는 가족, 넷째는 장애아를 출산 후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가족입니다.

그런데 네 번째인 장애아를 출산하거나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고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들은 교회가 어느 순간 자신들을 어색해하고 미안해했다 말합니다. 조금 더 부정적인 이유는 교회가 자신들과 자녀를 불편해했으며 세례와 여러 교회의식에서 제외시켰다고까지 말합니다.

여전히 사회와 교회는 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분명하게 드러나는 아픔과 욕구를 교회가 해결하기 어렵고 장애와 그 가족의 존재 자체가 부담입니다. 저를 만나는 교회의 목회자들과 교사들은 ‘장애’가 무엇인지 여전히 고민하며 묻고 있습니다.

사실 장애가 무엇이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느끼는 장애의 주관적인 아픔을 목회자나 교회가 ‘공감’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전문적인 장애인 사역자들도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해줄 것들이 거의 없습니다. 사실상 장애인과 그 가족들도 자신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모릅니다. 비교대상이 없고 정말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누군가와의 교제를 통해 자신들의 고난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거리에서 들어주고 기다려주면 됩니다.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는 주변의 장애인 사역자들을 통해 반나절 정도 상담 받으시면 됩니다.

올해도 장애인의 날과 장애인주일은 어떤 의미를 찾지 못하고 지나가고 있어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교회가 세워져야 할 시기에 이들이 예수 공동체를 살릴 때가 오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최전선에서 사역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곳에서 전쟁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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