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용한 목사의 옥수동 소나타]

“이 골목길은 일부 차량이 통행할 수 없습니다. 폭 2미터, 높이 2미터 이상(특히 택배차량) 차량은 주택 처마(물받이) 담장이 걸립니다. 통행하다 파손시킬 경우 이제까지 보수한 수리비 전액을 청구하겠습니다.”

옥수동의 가파른 골목길에는 매일처럼 이 길을 오르내리는 이들의 고단함이 배어있다. 교회는 이처럼 막다른 곳에 처한 이웃들의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옥수동의 가파른 골목길에는 매일처럼 이 길을 오르내리는 이들의 고단함이 배어있다. 교회는 이처럼 막다른 곳에 처한 이웃들의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금호역 3번 출구에서 옥수중앙교회로 올라가는 골목길에 걸려 있는 안내문이다. 골목길은 승용차 한 대 제대로 지나가기 어려울 만큼 좁고 비탈지다. 높다란 아파트 단지를 보면서 옥수동이 무슨 달동네였나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그늘지고 걷기 팍팍한 골목길을 오르다 보면 옥수동이 달동네였고 아직도 가난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 동네임을 알게 된다.

옥수동은 나에게 가난한 사람들의 고단한 하루살이를 깨닫게 해 준 곳이다. 부임 후 첫 가을 대심방 때였다. 심방대원과 함께 좁디좁은 골목길을 한참 올라가자 막다른 골목이 나왔고 낡은 이층 연립주택이 보였다. 그런데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연립주택 슬라브 지붕 위에 있는 옥탑 방 집이 심방을 가야 할 곳이었다. 폭이 50센티미터 정도나 될까. 옥탑 방으로 오르는 좁고 가파른 철제 계단을 오를 때는 어지럽기까지 했다.

옥탑 방에 살고 있는 삼십대 여 집사는 미싱사였다. 평소에는 세 살과 한 살짜리 남매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인데, 담임목사가 심방을 온다고 휴가까지 내고 아이들도 데리고 있던 참이었다. “남편은 일 나갔어요?” “죄송해요! 목사님 오신다고 했는데…. 많이 피곤한가 봐요!” 밤새도록 택시 운전을 한 남편은 옆방에서 자고 있었다.

과일과 차를 내오면서 여 집사는 죄송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여집사는 가져온 배를 깎기 시작했다. 배는 언뜻 보기에는 비싸 보일만큼 크고 탐스러웠다. “배가 수박만 하네. 뭘 이렇게 큰 걸 샀어요?” 여전도사의 말에 여 집사는 ‘별로 크지도 않아요’하며 쑥스러워 했다. 배를 깎는 동안 내가 이것저것 묻자 여 집사는 조곤조곤 대답을 이어갔다.

회사 택시를 모는 남편이 사납금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이야기며, 둘 다 물려받은 재산 없이 전라도 시골에서 올라와 고생한 이야기며, 지금 살고 있는 옥탑방도 힘들게 얻었다는 이야기였다.

배를 깎는 여 집사의 손가락에 미싱 일을 하다 생긴 상처들과 굳은살이 보였다. 손가락마다 한두 개씩은 족히 있는 것 같았다. 여 집사는 그 손으로 평소에는 엄두도 못 내지만 담임목사가 심방을 온다고 큰 맘 먹고 가장 큰 배를 골랐을 터였다. 예배를 시작하기 위해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를 하는데 철제 계단을 오르면서부터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구나 싶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옥탑 방에서 하루하루 아등바등 살아가는 가난한 부부의 고단함이 새록새록 느껴졌다.

나는 ‘비닐침대’란 것도 옥수동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달동네 주민 중에는 환자나 노인들이 많다. 가족이라도 있는 경우에는 그나마 낫지만 홀로 살거나 노인 내외만 사는 가정은 으레 ‘비닐 침대’를 썼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불빨래는 고역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은 침대나 요를 비닐로 감싸 ‘비닐 침대’를 만들어 썼다. 그러면 오물이 생겨도 걸레로 쓱쓱 닦아낼 수 있고 이불 빨래의 힘든 수고도 덜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옥수동 달동네에서 목회를 하면서 초대교회의 모습을 생각하곤 했다. 초대교회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형제를 만나 풍성한 교제를 나누고, 영적으로 놀라운 체험을 하는 나눔의 공동체였다. 나눔이란 자기 욕심으로부터 탈출이요, 자기 성취와 성공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 그들은 자기의 것을 아무 조건 없이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교회가 닮아가야 할 진짜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교회는 세상의 고통과 아픔에 동참해야 하며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한다. 교회는 가난한 자들과 함께 울고 웃어야 하며, 민족의 고통과 아픔에 동참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나눔 공동체 교회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기억하면서 진정한 하나님나라의 공동체가 이 땅 위에 세워지도록 교회는 함께 손을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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