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성직자의 삶은 평신도의 복음이다
[논단] 성직자의 삶은 평신도의 복음이다
  • 기독신문
  • 승인 2019.03.25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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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규 목사(부전교회)
박성규 목사(부전교회)
박성규 목사(부전교회)

필자가 2017년 12월 11일 <기독논단>에 소개한 바 있는 중세교회의 이야기를 상기하고자 한다. 중세교회 성직자들의 도덕적·윤리적 타락은 심각했다. 오래된 성당을 헐고 새롭게 건축할 때 성당 마루 밑에서 발굴되던 유골들은 당시 성직자들이나 수녀, 수도사들의 도덕성을 보여준다.

유명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Erasmus, 1466~1536)가 네덜란드 하우다의 성당 신부와 가정부 사이에서 출생한 사생아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477~1517년 어간의 교황들은 절반이 사생아를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스코틀랜드의 성(姓)인 맥타가르트(MacTaggart)는 ‘사제의 아들’이라는 뜻에서, 맥냅(MacNabb)은 ‘수도원장의 아들’이란 뜻에서 기원했다. 수도원에는 동성애자들이 있었고, 성직자들은 파티를 열고 춤의 향락에 빠져 있었다. 어떤 이는 1477년 그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수도원의 야밤 댄스와 향연이 일반 사회의 것보다 더 야하다”고 썼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온 유명한 경구가 “성직자의 삶은 평신도의 복음이다”이다.

우리가 어찌 복음이라는 말을 목회자의 삶에 비유할 수가 있겠는가? 복음은 고린도전서 15장 1~4절에 나오는 대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십자가의 공로로 속죄 받고,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 죄성을 가진 몸, 쇠하고 죽을 몸이 부활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인적이고 온전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내용이다. 우리 주님께서 이루신 이 놀라운 복음을 어찌 미천한 목회자의 삶으로 비유할 수 있겠는가? 중세 경구의 의미는 다만 목회자의 삶이 변질되고 타락하면 복음으로 나아가는 길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것을 강조하다보니 “성직자의 삶은 평신도의 복음이다”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우리 목회자들의 삶은 어떠한가? 총회를 섬기는 목사와 장로의 삶은 어떠한가? 총회 안에는 존경받는 훌륭한 목사와 장로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복음의 길을 막아서는 이들도 있다. 총회도 교회다. 총회도 교회다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총회에 와서 교회답지 못한 모습을 볼 때가 종종 있다. 일부의 총대들은 교회답지 못한 총회를 만든다.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 시대에 총회가 교회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는 한국교회의 미래를 열어가는 교단이 될 것이다. 훗날 교회사가들이 이 시대의 역사를 기록할 때 그 시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총대의 삶은 그 어느 시대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평신도의 복음이 되었다고 기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귀한 일이 우리가 사랑하는 교단, 우리 총회에 이루어지기 위해서 한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돈에 대해 자유로운 총대들이 되었으면 한다. 예수님은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돈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라, 돈이 주인된 사람이다. 옛말에 “견리사의(見利思義)하고 견위수명(見危授命)하라”고 했다. 이익을 볼 때는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기를 볼 때는 목숨을 주라는 말이다.

우리 총회는 재판에 있어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운가? 물론 성경과 총회 헌법에 따라 판결하는 훌륭한 재판국원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재판의 불공정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이다. 우리 총회는 발언에 있어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제103회 총회에서는 총회장이 이런 일들을 원천적으로 차단했지만, 과거에는 한 번에 수십 만원, 또는 수백만 원을 받고 발언을 해주는 총대도 있었다고 한다. 사안이 정당하다면 돈을 받지 않고 발언해 주어야 할 것이요, 사안이 부당하다면 돈을 주어도 지지발언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총회는 선거에 있어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총회의 선거는 총회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뽑는 일이다. 지도자 하나를 잘못 뽑았을 때 그 폐해가 얼마나 큰지 우리는 경험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건네는 돈에 의해서 총회의 지도력을 맡긴다면 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가? 아니 불의한 일이며 범죄행위가 아닌가? 교회는 세상의 기준보다 더 높은 영적·도덕적 수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선거의 현장은 세상의 선거 현장 못지 않게 맘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제까지 그렇지 않은 훌륭한 후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지 않게 우리는 돈봉투에 끌려 인물을 선택했던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성직자의 삶은 평신도의 복음이 되어야 한다. 이번 총회를 앞두고 헌의안을 준비하는 노회들은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총회가 되기 위한 심도 깊은 헌의안을 제출하여 우리 총회가 맘몬의 유혹을 극복한 교회다운 총회, 거룩한 총회의 모습을 회복하길 바란다. 한국교회에 희망이 되는 총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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