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용한 목사의 옥수동 소나타]

딱히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한 번 두 번 우리 교회 이야기가 매스컴을 타자 우유 배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져갔다. 우유 배달에 써달라며 매달 1~2만원씩 보내주는 분부터 목돈을 보내주는 분까지 여러 후원자들도 생겼다. 얼굴도 모르고 만나본 적도 없지만 후원자들은 우리 교회가 이 시대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며 응원하는 마음으로 후원금을 보내왔다.

언제부터인가 기업들도 하나 둘 후원을 자청하고 나서고, 구청과 우유 회사에서까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매일유업의 김선희 사장은 우유를 마시면 속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유당을 제거한 ‘소화가 잘되는 우유’를 저렴하게 공급해주기도 했다. 개당 1100원하는 고급 우유인데, 일반 우유와 마찬가지로 700원씩에 배달하며 후원해주고 있다.

서울시 전역에 우유 배달 사역이 이루어져 어르신들의 고독사가 크게 줄어들기를 소망한다.
서울시 전역에 우유 배달 사역이 이루어져 어르신들의 고독사가 크게 줄어들기를 소망한다.

우유 배달을 시작한지 13년째인 2015년에는 골드만삭스의 통 큰 기부를 계기로 몇몇 후원자들와 함께 사단법인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 배달’을 설립했다. 사단법인을 만들면 재정을 좀 더 투명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뿐더러, 후원 확대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또 후원자들에게 소득공제 혜택을 줄 수도 있어 여러모로 필요한 일이었다.

사단법인 사무실은 우리 교회 안에 두고 사무실 관리도 나와 교역자들이 함께 하기로 했다. 외부에 사무실을 마련할 재정 여유도 없었지만 여유가 있더라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사무실을 교회 안에 두면 나와 교역자들이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지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재정을 아끼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 배달’은 행정비가 일절 들어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구호 사업을 하는 NGO의 경우 후원금의 25~30% 정도가 행정비로 사용된다는데, 우리 법인은 후원자가 1만원을 후원하면 1만원 전부를 독거노인들의 우유 값으로 사용하는 셈이다.

사단법인의 사무실을 여는 날 나는 사무실 벽에 서울시 지도 한 장을 붙여놓았다. 그리고 그 지도 위에 각 구별로 배달하는 우유 개수를 기록해 두었다. 앞으로 나의 바람은 서울시 전역 25개구에 각 150가구씩, 총 3750가구에 우유를 배달하는 것이다. 그 쯤 되면 서울시 전역에서 누군가 고독사로 생을 마치는 비참한 뉴스는 많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돌이켜 보면 우유 배달은 내가 뛰어나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라 옥수중앙교회 목사가 되었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던 일이다. 2001년 옥수중앙교회에 부임했을 때 나는 옥수동을 잘 몰랐다. 달동네로 유명한 곳이라 가난한 마을일 것이라는 짐작만 했을 뿐 얼마나 가난한지, 어떻게 가난한 이들을 품어야 하는지 몰랐다. 다만 따뜻한 마음만이 있을 뿐이었다.

가난하고 병들고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사회주의자들이 주로 관심을 많이 보이는 듯하지만, 사실 그들에게 먼저 진실한 관심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성경이다. 성경은 가난한 자를 착취하거나, 가난한 자를 돌아보지 아니한 자를 엄히 책망하고 있다. 복음적인 그리스도인과 개혁적인 교회는 복음 전도에 열정을 쏟는 만큼 이 세상을 향해 예수님의 마음과 눈과 손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이웃을 구제하고 봉사하고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십일조 헌금만이 아니라 시간의 십일조, 달란트의 십일조를 하나님과 이웃에게 다시 내 놓을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많은 부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현장으로 변화될 것이다. 우리 각자가 그런 믿음으로 실천할 때 내 힘을 마구 휘두르며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욕심을 내려놓게 되고, 내 뱃속만을 채우려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업적을 이루고 자기 명예를 쌓으려는 욕망을 멈추고 상처 난 사람들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변두리 인생으로, 비천한 자리로 오셨고,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셨다. 그분은 변두리에서 버림받고 신음하는 우리와 같은 인생을 부르셔서 하나님나라의 중심으로 초대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맞이하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사랑의 혁명’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스도의 교회라면 마땅히 그 가르침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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