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그렇듯이 총회에도 좋은 일꾼들이 중요한 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란 오직 섬김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실제로 수많은 교인들은 그렇게 교회 안의 여러 자리를 지켜주고 있다. 그 덕에 교회는 건강하게 존재하고 목회자도 사역의 보람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극히 일부에서 총회 안의 자리를 권력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그러다보니 자리싸움이 치열한 경우도 있다. 심지어 2~3년을 앞두고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움직임이 보이고 그것을 위한 조직도 등장한다. 그럴듯한 명분이나 이름으로 포장하지만 누구라도 그것이 다른(?) 목적을 가진 모임임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또 그렇게 만들어진 조직에는 많은 비용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 모임들이 권력지향적으로 기능화 되면서 소외되고 싶지 않거나, 힘을 갖고 싶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몰려들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것들은 점점 더 권력집단화 한다. 그리하여 총회가, 어떤 집단이나 조직에 의해 움직이는 현상도 나타난다.

우리는 분명히 총회를 건강하게 섬기려는 순수한 목적의 조직이나 집단이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렇게 순수하게 시작된 모임들도 그 가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정치는 정의가 아니기에 온갖 이해관계가 얽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교회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현상이 둥지를 틀기도 한다. 섬김이라는 가치가 실종된 결과다.

내가 가진 돈이나 힘을 선한 목적으로 사용하면서 섬겨야 그 자리가 빛나는 법이다. 그렇게 섬긴 후에는 거두려고 하지 않아야 건강한 자세다. 타인의 것을 사용하며 섬기는 척 하고 뿌린 것을 거두려고 하니 부패할 수밖에 없다. 기여금이나 헌금조차도 남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그 단면이다.

우리들은 교회 안의 직분자들에게 섬김의 정신을 가르치고 또 설교한다. 직분을 계급처럼 여기지 말라고 훈계하기도 한다. 그렇게 가르치는 우리가 총회의 자리를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인식한다면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데 힘을 써야 할 총회의 일꾼들이 과연 섬기는 역할을 하는지, 아니면 권력화하고 군림하며 이권을 챙기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섬겨야 할 ‘자리’가 벼슬이 되고 권력화하면서 일어나는 부작용은 교회와 총회를 예수님의 정신에서 멀어지게 할 뿐이다. 그 결과는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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