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택성 장로(안동옥동교회)

권택성 장로(안동옥동교회)
권택성 장로(안동옥동교회)

가르쳐야 배울 수 있고 배워야 실천할 수 있으니 어쩌면 논란을 벌일 대상도 아니다. 가르치는 것이 더 말할 것도 없이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고 교육의 주체적 핵심은 가르치는 데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

예수님은 공생에 기간 오로지 가르치시는 일에 전념하셨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학제를 보면 2(어린이집), 2(유치원), 6, 3, 3, 4, 3(대학원) 23년 동안 오로지 배우는 데 전념한다. 물론 중도에 진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지만 현재 한국의 대졸 출신 비율로 볼 때 세계 어느 나라도 갖고 있지 않은 오랜 교육 기간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황금기인 20대 중반까지 이러한 체제에 묶여 교육을 받았다면 당연히 우리 사회는 명철한 인재들로 넘쳐나고 세상도 일류사회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 관계 등 5포 세대라는 자조에 가까운 말이 유행이 되고, 가장 파릇파릇해야 할 20대가 기성세대에 비해 훨씬 부정적이라는 상황에 이르러서는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지혜 없음을 탓하게 되고 무한 책임을 느끼게 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가르치는 우리 모두는 함께 골몰해야 할 지점이다.

한편으로 교회 내부의 사정을 돌아보자. 통계에 의하면 현재 전체 교회의 65% 이상이 유초등부가 없고 75% 이상이 중고등부가 없다는 전언이다. 예전에는 개척교회만 하더라도 목회자 자녀들 만으로나마 주일학교를 꾸리고 확장해 나가 그 주일학교로 인해 부흥한 교회가 드물지 않았다. 그런데 아예 주일학교가 없다니 참으로 슬픈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교회를 위해 담임목사와 주일학교를 담당하는 교역자들의 피를 토하듯 하는 열정을 심심치 않게 보아왔고, 지금도 교회마다 헌신된 교사들이 우리 교단만도 20만 명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교회마다 주일학교가 반 토막이 어떻고 삼분의 일로 줄었다는 등 모두 다 절망하고 있다.

한때 60~70년대 교회교육은 융판을 활용한 시청각교육 등으로 기술적인 면에서 학교교육을 앞선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교회교육의 모든 방법이 학교교육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아야 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300여 년 전에 사무엘 버틀러(Butler)가 했던 말을 떠올려 본다.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동의했던 사람은 세월이 지나도 똑같은 의견을 간직한다.” 무슨 말인가? 자신의 의지가 되도록 교육과 설득이 충분하지 않으면 그 교육은 실패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미 교회교육도 실패의 문턱에 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무서운 경고와 협박성 교육과 전도가 반드시 그 효과를 내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우리 아이들에게 진노의 하나님만 가르쳐 그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강압에 의한 교육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동의한 것보다 훨씬 못한 결과를 볼 수 있다. 오히려 요즘 교육이 너무 물러서 경고는 언감생심, 사탕만 주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돌아봐야 하겠다.

다른 한 가지는 아직 때가 지나기 전에 제대로 가르쳐야 할 일이다. 지리산 청학동 훈장은 그의 저서 <몸으로 가르치니 따르고 입으로 가르치니 반항하네>에서 자녀들에게 가르칠 때 ‘슬하(膝下)에 있을 때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하는 밥상머리 교육이 평생 간다는 뜻일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조기 교육을 위해 전국 교회에서는 아직 옹알이 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은 부모님 교육이겠지만, 영아부를 개설해서 땀을 흘리고 있다. 부디 이러한 교육이 성공해서 주님의 자녀로 올곧게 자라 하나님의 나라에 쓰일 동량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런 여러 가지 것들보다 우선할 것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할 만큼 지혜가 쌓여 있다. 명철의 보고인 성경에서 배울 일이다. 이제는 가르치지 말고 배우자.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고 오직 말씀 속에서 배울 때다.

몇 해 전 전국주교 회장으로 섬길 때 슬로건을 “교사가 배워야 주일학교가 살고, 주일학교가 살아야 한국교회가 산다”로 정한 바 있다. 교사도 배워야하고 교역자도 장로도 부단히 배워야 한다. <기독신문>이 목회플러스 콘퍼런스를 통해 늦은 감은 있지만 교역자들에게 배움의 장을 마련한 것은 우리 교단의 희망이다. 우리 장로들도 이런 배움의 장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모든 성도들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부단히 배웠으면 좋겠다.

이 봄은 성경 속으로 여행하며 배우기에 너무나도 좋은 계절이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