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회기 농어촌 교역자 부부수양회
기대 이상의 절경에 참가자들 큰 호응 … “새로운 동역자들과 만남으로 풍성”

103회기 농어촌 교역자 부부수양회는 준비과정부터 몇 가지 악재가 생기며 삐걱거렸다. 우선 중국 현지 사정으로 단체비자가 불가해 수양회 10여 일 앞두고 급하게 개인비자를 발급받아야만 했다. 또한 사전에 접촉했던 이승희 총회장 등 몇몇 강사들이 동행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무엇보다 수양회 기간 내내 장가계에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돼 임원들의 근심이 커져갔다.

3월 4일 오전 6시, 인천국제공항에 집결한 참가자들은 중국 장사까지 3시간 비행에 이어 다시 육로로 장가계까지 5시간 이동 끝에 숙소에 도착했다. 우려대로 장사에서 장가계로 가는 길 내내 거센 비바람과 마주했다. 산악지대인 장가계의 특성상 비가 내릴 경우 프로그램 변경까지 고려해야 했다.

하지만 개회예배에서 수양회를 위해 한 목소리를 간절히 기도한 덕분일까. 다음날 비구름이 사라졌고, 오히려 운해가 생기며 장가계의 절경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천자산 보봉호수부터 십리화랑, 황룡동굴, 유리잔도, 귀곡잔도, 천문산의 유리다리 대협곡까지 웅장한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며 눈을 즐겁게 했다.

처음으로 수양회에 참가했다는 김남호 목사(신촌교회)는 “아름다운 협곡을 보며 감탄했다. 농어촌부에서 쉼과 힐링을 주겠다고 했는데 충분히 그것들을 느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연희 사모(음동교회)도 “장가계의 모습은 기대 이상이었다.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를 선택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장가계의 절경만큼이나 강사들의 설교로 안식을 얻었다는 참가자들도 적지 않았다. 강사들 또한 열악한 환경에서 복음을 전하는 참가자들을 위한 위로와 도전이 깃든 말씀을 들고 강단에 올랐다.

개회예배에서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는 제하의 설교를 전한 장봉생 목사는 “저 또한 농촌 출신으로 농촌교회에서 믿음을 갖고 지금은 도시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며, “어디에서 목회를 하느냐보다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고 목회를 한다면 주님께서 천국에서 수고했다고 어루만져 주실 것”이라고 권면했다. 정중헌 목사도 ‘엘리와 한나’라는 제하의 설교에서 “여러분이 계신 어디에서나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사람이 되고 이 땅에 소망을 줄 수 있는 목회를 하길 바란다”며 격려했다.

농어촌교역자부부수양회에서 이박행 목사가 농어촌교회 자립을 위해서 총회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대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농어촌교역자부부수양회에서 이박행 목사가 농어촌교회 자립을 위해서 총회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대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셋째 날 새벽예배 강사로 나선 이박행 목사의 강의는 참가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 목사는 총회가 농어촌교회의 자립을 위해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플랫폼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예로 농어촌선교 특별위원회 조직 및 운용, 각 신학교에 농어촌목회 과정 개설, 농어촌 목회연구소 및 훈련소 설립 등을 들었다.

도태희 목사(완포교회)는 “이박행 목사님 말씀에서 도전을 받고 깨달음을 얻었다. 그가 내놓은 과제를 놓고 농어촌 목회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김동원 목사(음동교회)는 “이박행 목사의 제안을 총회에서 꼭 진행하길 바란다. 당장 우리에게 혜택이 없다고 해도 다음 농어촌 목회자들이라도 총회의 지속적인 지원에 힘입어 목회하길 기대한다. 그래야 농촌교회뿐만 아니라 농촌이 산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울러 이번 수양회는 유사한 환경에서 사역하는 이들 사이에 충분한 교제의 시간을 제공했다. 참가자들은 틈틈이 목회 중 애로사항이나 전도 방법 등을 나누며 끈끈한 정을 쌓아갔다.

이웃교회 장로의 후원으로 처음 수양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는 이광선 목사(구미영성교회)는 “나만 힘들게 목회를 하는 줄 알았는데, 나못지 않게 어려운 분들을 만났다. 4박 5일간 함께 지내며 동역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계속해서 교제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한 동역자’라는 주제처럼, 농어촌 목회자와 사모들은 새로운 동역자를 사귐으로 더욱 풍성한 수양회가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음 만남을 기약한 작별의 순간은 아쉬움과 뭉클함이 가득했다.

“총회차원 농어촌 대책 적극 추진”
변수 많았던 수양회, 협력으로 무사히 마쳐

농어촌부장 이재천 장로

수양회 장소로 장가계를 결정했을 때 시큰둥한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농어촌부장 이재천 장로(대한교회)는 총회에 자주 출입하는 사람들에겐 식상할 순 있지만, 농어촌 목회자들의 경우 휴양지보다 비경을 품은 장가계를 더 선호할 것이라 판단했다. 

“농어촌 목사님과 사모님들을 많이 접한 경험에 따라 장가계에 모시고 가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다행히도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즐거워하셨고 그 모습에 저와 임원들이 더 기뻤습니다. 또한 예배에 적극 참여해주시고 강사들 말씀을 진지하게 듣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울러 이재천 장로는 준비과정부터 수양회 기간까지 헌신을 아끼지 않은 임원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했다. “어느 때보다 변수가 많았던 수양회였지만, 그때마다 임원들이 고민하여 출구를 마련했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됐기에 별 탈 없이 수양회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참가자들 사이에 화제가 됐던 이박행 목사의 강의를 이재천 장로 또한 귀담아 들었다고 했다. 특히 총회차원의 플랫폼 마련에 공감하며 농어촌부에서 이와 관련한 헌의안을 청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박행 목사님이 언급한 내용을 연구하여 104회 총회에 청원하겠습니다. 나아가 도농 직거래를 넘어 도농 인적교류도 모색할 계획입니다. 총회와 농어촌부가 노력한다면 농어촌교회가 변화되고 자립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농어촌부는 수양회에 이어 농어촌교회 자활자립세미나와 농어촌교회 재정 청원이라는 두 개의 큰 사역을 앞두고 있다. 특히 올해 농어촌교회 자활자립세미나는 사상 처음으로 중부 호남 영남 3개 권역에서 열려 기대를 모은다. 이재천 장로는 농어촌 목회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사역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강사 선정부터 강의 내용까지 충실히 준비해 농어촌교회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되는 세미나를 마련하겠습니다. 또한 가물었던 땅에 단비가 내리는 것처럼 농어촌 목회자들이 조금이라도 혜택을 얻을 수 있게 농어촌교회 재정 청원을 진행하겠습니다.”

공항 출국장서 아이 생명 살린 최영학 목사 
“교사 강습회서 배운 응급처치 큰 도움”

“여기 좀 도와주세요. 우리 아이를 살려주세요!”

3월 4일 오전 8시경 인천국제공항 236번 탑승구. 출국을 기다리던 수양회 참가자들에게 목이 터질 듯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두 살배기 아이를 안고 있던 한 엄마의 절규였다. 순식간에 아이 엄마의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아이는 숨을 쉬지 않고 의식을 잃은 상태. 먼저 건장한 체구의 남성이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때 최영학 목사(경기북노회·세계로교회·사진)가 미끄러지듯 뛰어들었다. 심폐소생술보다 기도 유지가 우선이라고 판단한 그는 말려들어간 아이의 혀를 끄집어내고 심장마사지를 하며 인공호흡을 했다. 그러기를 1분 정도 지났을까. 아이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위험한 순간을 넘긴 것이다. 그리고 몇 분 후 아이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최영학 목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고 아이를 품에 안았다.

연신 고맙다는 아이 엄마의 인사를 받으며 비행기에 오른 최영학 목사. 그는 주일학교연합회 교사강습회에서 응급처치를 배웠다고 했다.

“한남노회주교연합회 총무 시절 교사강습회에 응급처치 강의를 편성했고, 저 또한 그곳에서 응급처치를 배웠어요. 교회 내에서 특히 어르신이나 아이들 같은 경우 위급한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목회자나 교사가 꼭 숙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쓰임 받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최영학 목사의 목회현장은 경기도 전곡. 평균 나이 70세의 어르신 5명이 교인의 전부다. 그럼에도 목회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했다.

“여느 농어촌교회처럼 목회환경은 열악하지만 즐겁습니다. 목사로서 설교할 수 있고 예배할 수 있는 자체가 제게는 즐거움입니다. 나아가 소망이 있다면 교회와 접촉점을 못 찾고 있는 청소년들의 영혼을 살려보고 싶고, 교회가 전곡에 있는 만큼 북한선교에도 꿈이 있습니다.”

수양회 기간 내내 웃음을 잃지 않고 분위기를 이끌던, 생일을 맞은 참가자에게 축하곡도 한껏 불러주었던 최 목사다운 답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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