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생활운동’ 주도 원로 4인, ‘삶의 혁명’ 강조

한국현대사는 1960년 4월 19일에 일어난 학생과 시민들의 거대한 민주주의 물결을 ‘4·19혁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역사는 주목하지 않았지만, 1960년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또 다른 혁명이 있었다. 그해 6월부터 8월까지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일어난 ‘새생활운동’이다.

4·19혁명이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적 혁명이었다면, 새생활운동은 낙후한 시민 의식과 방만한 생활을 변혁시킨 삶의 혁명이었다. 당시 시민들은 밀수한 양담배를 자랑스럽게 피웠고, 대낮에도 댄스홀에서 유부남 유부녀가 엉겨 춤을 추었다. 국회의원들은 가짜 번호판을 달고 군용차를 타고 다녔다.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 한 서울대 학생 4명이 교정에서 토론을 했다. 민주주의를 위한 혁명과 함께 한국 사회에 생활의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 토론이 새생활운동의 시작이었다. 그 학생들이 20살 김명혁 김상복 손봉호 이형기였다.
80세를 앞둔 한국교회 원로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김명혁(강변교회) 김상복(할렐루야) 목사와 손봉호(전 서울대) 이형기(전 장신대) 교수는 3월 7일 강변교회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원로들은 “새생활운동은 기독청년들이 순수한 신앙운동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처럼 그때도 사회는 절망적이었지만 희망을 품었다. 오늘의 청년들도 정의와 공의에 관심을 갖고, 복음으로 사회를 변혁시키는 일에 나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1960년 4·19혁명에 이어 ‘새생활운동’으로 삶의 혁명을 일으킨 김상복 손봉호 김명혁 이형기 박사(왼쪽부터)가 간담회를 열어 기독청년들에게 복음의 열정을 강조했다.
1960년 4·19혁명에 이어 ‘새생활운동’으로 삶의 혁명을 일으킨 김상복 손봉호 김명혁 이형기 박사(왼쪽부터)가 간담회를 열어 기독청년들에게 복음의 열정을 강조했다.

간담회를 주선한 김명혁 목사는 당시 새생활운동의 상황을 설명했다. 4명의 대학생을 중심으로 서울대 학생들은 정부기관과 경찰청을 찾아다니며 커피와 양담배 밀수가 대전시 1년 재정과 맞먹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100여 명의 국회의원들이 가짜 번호판을 달고 군용차를 탄다는 것을 파악했다. 명동 한복판에 양담배를 쌓아놓고 불을 지르며 사회현실을 지적했고, 국회의원들의 차를 빼앗아 서울시청 앞에 전시를 했다. 장면 국무총리와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금지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형기 교수는 “새생활운동은 신앙에 바탕을 두었지만 비기독교 학생들이 많이 동참했다. 서울에서 새생활운동을 펼친 학생들이 고향으로 내려가 각 지역에서 새생활운동을 펼쳤다”고 회상했다. 서울의 대학은 물론 지방의 대학, 고등학교와 중학교에서도 새생활운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밀수를 하던 터키 사람까지 양심의 가책을 받아 “부패가 심한 터키도 새생활운동이 필요하다”며 번 돈을 모두 기탁했다고 한다.

김상복 목사는 새생활운동이 바로 복음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 목사는 “사회가 근본적이고 구조적으로 변화하려면, 사람이 변해야 한다. 나는 복음으로만 사람이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며, “목회자들은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성화에 이르고, 삶에서 선을 행하면서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구원과 성화와 섬김에 초점을 두고 전심전력해서 목회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손봉호 교수는 “오늘날 청년들이 처한 상황이 절망적이지만, 희망을 갖고 도전하길 바란다. 복음 안에서 공의에 관심을 갖고 열정을 쏟길 바란다. 한국사회가 부정직에서 벗어나기 위한 운동, 미세먼지 문제를 위한 환경과 생명의 운동 등 보다 나은 세상을 추구해 나가길 바란다”고 강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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