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만 목사(구암교회·군산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김영만 목사(구암교회·군산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김영만 목사(구암교회·군산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3·1운동은 일제에 대한 우리 민족의 저항운동이었다. 여기에 기독교인들이 주축을 이룬 이유는 3·1운동이 바로 불의에 대한 정의의 항거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정의냐?’하는 문제가 나오는데, 이 문제를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에 입각하여 이해한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바로 이런 관점에서 3·1운동 당시 기독교인들은 일제의 포악스러운 무단정치가 분명히 ‘악’에 속한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성경은 국가 권력도 하나님이 세워주신 것이기 때문에 복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 권세에 복종하라는 말씀은 악한 권세에까지 복종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된다고 믿을 때 그렇게 하라는 의미이다. 기독교인은 두 나라의 시민권을 소유한다. 하나는 세상 나라요, 또 하나는 하나님나라이다. 우리는 세상 나라에서 하나님나라의 의를 이루며 살아야 할 존재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악 된 세상을 구원코자 사랑하는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 지상의 교회들도 그분을 본받아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의와 질서와 평화를 이룩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불의 앞에서 저항할 수 있는 용기의 근거이다.

또한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어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들이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택하신 백성들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나라 사랑은 이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나라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의 과제를 구체적인 오늘의 삶에서 찾아나서야 한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일제강점기의 수난 중에 알곡과 가라지가 구분되었던 역사를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매국노는 불신자 속에만 아니라, 교회 속에도 있었다. 특히 장로교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한 역사는 한국교회에 가장 뼈아프고 슬픈 교훈을 남겨주었다. 이후에도 철저한 역사 바로 세우기가 이루어지지 못했기에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에는 친일 잔재가 판을 친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며 왜곡된 역사를 깨끗이 청산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발판을 만들어야 할 시대적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3·1운동은 민족정신을 굳건하게 했다. 온 겨레가 하나로 뭉치며 스스로에 대해 새롭게 자각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전 세계 앞에 우리가 자주 국가임을 선포하며, 강력한 독립의지를 널리 알렸다.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고, 일제가 우리 민족을 무력으로 다스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문화정치를 도입하는 계기가 됐다. 나아가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중국 인도와 같은 다른 나라들에게까지 큰 감명과 용기를 전해주었다. 결과적으로 세계가 한국의 독립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었다.

이처럼 중차대한 역사적 사건에 기여함은 물론, 그 운동의 주체세력으로 작용하면서 기독교는 일반대중들로부터 칭송과 함께 정통성을 인정받았다. 3·1운동을 통하여 교회 스스로도 신앙본질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을 겨레 앞에 드높이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만약 당시의 기독교인들이 순교와 순국까지 각오하며 애국애족의 정신을 실천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미지는 상실한 채, 그저 기복신앙이나 추구하는 집단으로 인식되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헌신한 믿음의 선진들이 있어 한국교회가 민족교회로 우뚝 설 수 있었음을 기억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3·1절 100주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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