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인 할매' 탄생시킨 입면제일교회 한광희 목사·김선자 사모 부부

곡성서 길작은도서관 운영하며 할머니들에 한글 교육 … ‘시의 마을’로 변화 이끌어

‘사박사박/장독에도/지붕에도/대나무에도/걸어가는 내 머리위도/잘 살았다/잘 견뎠다/사박사박’(윤금순, <눈>)

‘열아홉에 시집왔제/눈이 많온 길을/얼룩덕꽃가마타고/울다가 눈물개다/울다가 눈물개다/서봉문앞애까침왔제’(김점순, <시집>)

지난 설날 즈음 개봉한 작은 영화가 우리들의 가슴을 울렸다. 전남 곡성 할머니들이 처음 한글을 배우고 시집까지 출간한 내용을 담은 <시인 할매>다. 서툴지만 아름다운 시 속에 담긴 할머니들의 주름진 인생과 순수한 마음이 관객과 평단 모두를 사로잡았다. 이들에게 인생의 새로운 즐거움을 가르친 이가 한광희 목사와 김선자 사모 부부(전남노회·입면제일교회)다. 부부는 길작은도서관을 운영하며 적적한 시골 마을에 활력을 선물했다.

“할머니들은 시에 평생을 담았습니다.” 한광희 목사와 김선자 사모는 전남 곡성에서 길작은도서관을 세워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글을 깨우친 할머니들이 시를 쓰며 변화하는 모습은 영화 &lt;시인 할매&gt;로 제작됐다.
“할머니들은 시에 평생을 담았습니다.” 한광희 목사와 김선자 사모는 전남 곡성에서 길작은도서관을 세워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글을 깨우친 할머니들이 시를 쓰며 변화하는 모습은 영화 &lt;시인 할매&gt;로 제작됐다.

한광희 목사와 김선자 사모 부부가 곡성에서 목회를 시작한 것은 2004년, 길작은도서관도 그 때 탄생했다. 교회를 중심으로 주변에 100여 가구 밖에 없는 작은 마을은 조손가정이나 한부모가정이 많아 아이들을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김선자 사모는 처음에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길작은도서관을 열었다. 사택 안에 작은 공간을 마련해 15~20명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사택 바로 아랫집을 얻게 되어 도서관을 옮기게 됐다.

“도서관을 정리할 때 마을 할머니들이 도와주셨는데, 책을 거꾸로 꽂으시더라고요. 알고 보니 한글을 모르시는 거였어요. 그 때 할머니들께 한글을 가르쳐야겠다는 결심을 했죠.”

60~70년 전, 깊은 시골 마을에서는 오빠나 남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학교 문턱 한 번 못 밟아본 소녀들이 많았다. 그 소녀들은 야학을 기웃거리다가 아버지에게 매를 맞기도 했고 시집을 가서는 친정에 안 좋은 소리를 전한다고 글자도 배우지 못했다. 할머니가 된 소녀들은 뒤늦게나마 한글을 배우기 위해 길작은도서관에 모였고, 김선자 사모는 군에서 문예교사 양성과정을 수료하면서 할머니들을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고지서도 읽고, 마을 간판도 읽고, 버스도 혼자 타고 시장에 다녀올 수 있으니까 배우는 걸 재밌어 하시죠. 그러다 시를 써오는 숙제를 내드렸는데 그 안에 할머니들의 80평생이 담겨 있더군요.”

시는 할머니들에게 마음을 치유하는 약과 같았다. 시를 통해 말로 못했던 한과 응어리를 토해냈다. 시를 읽을 때면, 자신들의 이야기 같아 서로 위로했다. 그렇게 토닥이면서 발간한 시집이 벌써 두 권이다. 아직도 정월대보름이면 나무 앞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절하는 마을이지만, 길작은도서관의 활약은 지역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도서관 덕분에 교회 문턱도 낮아졌고, 교회에 대한 부담감이나 반감도 많이 줄었죠. 교회 목사와 사모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구나 알아주시고 ‘교회가 좋은 것 같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다르다’는 인식이 많이 생겨서 참 감사해요. 도서관에서 씨를 뿌리면 교회에서 전도로 열매 맺어야죠.”

시골 목회라는 것이 녹록치 않은 일인데, 사비로 도서관까지 운영하는 것은 스스로 짐을 더 지는 일이다. 김선자 사모는 곡성교육문화회관에서 일을 하면서 도서관을 놓지 않고 있다. 무너진 담벼락과 비가 새는 지붕이 막막하지만 하나님이 사역하라고 부르셨으니 책임져주시리라는 믿음도 굳건하다. 한광희 목사는 도서관 사역에 이어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인생과 삶을 들어주고, 영상자료로 남기는 사역까지 진행하고 있다.

“도서관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 참 기쁩니다. 이렇게 영화로 만들어지고 전국적으로 관심을 받을 줄 몰랐는데,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초지일관 밀고 나가서 도시에서도 성도들이 찾아올 수 있는 시골교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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