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신 목사(북일교회)

김익신 목사(북일교회)

필자는 기독신문 논설위원으로서 보람 있고 행복한 사역을 한 이후로 독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그동안 원고로 시대적 사명을 공유하다가 마지막 글을 나누게 되었다. 무엇이든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적용될 때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유언적(?)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동안 지면에서 전한 나라 및 사회 그리고 교단과 교계와 교회를 향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공감대가 형성이 되어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주어 아름다운 긍정의 열매를 만들어 내는데 보탬이 되었길 바랄 뿐이다.

마지막 글을 청탁 받은 후 고심하며 기도 가운데 얻은 주제가 있다. 괴물(怪物·Monster)이다. 어떤 영화의 대사이다. “괴물을 잡기 위해서 괴물처럼 되면 안돼.” 괴물, 결코 유쾌한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며 돌아볼 필요가 있는 단어다. 절대 한국사회가, 한국교회가 괴물이라는 말이 아니다. 교단이 괴물이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지만 왠지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되어가고 있다면 우리는 잠시 심호흡을 하면서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근래 들어서 공공연하게 특정교회나 성도들의 공동체를 공격하는 단어로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 때문이리라.

한국영화 중 1092만명이라는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품인 <괴물>이 있다. 우리는 괴물의 성격을 보았다.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닥치는 대로 파괴한다. 닥치는 대로 공격한다. 닥치는 대로 혼란의 상황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것이 괴물이다. 사전적 의미를 보면 ‘괴상하게 생긴 물체’이다. 몬스터(Monster), ‘정상이 아닌 생물을 뜻한다.’ 본질에서 벗어난 정상적인 것이 아닌 괴상한 물체가 되어 버려 무섭다. 요즈음 나라가 시끄럽다. 아주 시끄럽다. 점점 두려워지는 예감은 필자만 가지고 있는 느낌일까? 태극기와 촛불이 대립하며 진보와 보수가 대립을 하며, 정권과 정권이 대립을 하며, 지역과 지역이 대립을 한다. 견해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바르게 한다며 떠들어 대는 소리인데 정녕 소름이 돋는다. 점점 괴물들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한국사 가운데 가슴 아픈 충돌들이 있었다. 사상과 이념 및 권력의 대립이었다. 그건 괴물들의 모습이었다. 아니 괴물들도 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모습들도 있었고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그 상처가 더 또렷이 선명해지는 것 같아 지금도 쓰리다. 그런데 사회적 혼란과 우상화 및 편협적인 생각과 주장들을 숙주삼아 자라나는 괴물들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 두렵다.

이런 정상을 벗어나기 시작한 변화의 과정에 한국교회들이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일부 목회자들이 부추기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과격해져가고 있다. 그래서 무섭고 두렵다. 왜냐하면 그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모습이 말씀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말씀이다.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통치자들과 선지자들이 맡겨 주신 양들인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먹으며 뼈를 꺾어 다져서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한다고 소름끼치는 사실을 지적하셨기 때문이다.

괴물 같은 밤을 만나게 하시므로 이상을 주시지 않으셨기에 지금 두렵다.(미 3:1~6) 이런 경종을 무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님께서 빛으로, 말씀으로 오시기 전까지 400여 년간 환상도, 말씀도 주시지 않으셨기에 말라기 선지자 이후의 암흑기를 만나게 하셨던 구속의 역사를 알기에 무섭다.

비관적인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흔히들 말하는 긍정의 생각으로 희망의 말만 하고 싶다. 진리는 살아 있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으며 그러기에 결코 주님께서 책망하셨던 강도의 소굴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봐야 한다. 악을 바로잡기 위해 하는 우리들의 행동이 또 다른 악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또 다른 악을 만들지 않는 것이 복음이다.(시 37:8) 복음이 적용되지 않고 은혜가 없는 성도와 교회는 괴물 같이 무서울 것이다. 자화상을 그리고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절대 괴물을 거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또 다른 희망을 주고 있는 메이저리그의 류현진 선수의 등 뒤의 이름이‘MONSTER’라고 선명히 새겨져 있는 것을 중계를 통해 보았다. 괴물, 처음에는 놀랐지만 점점 생각이 달라졌다. 혹시 그 화면에서 보인 장면이, 성실하게 역투하고 있는 류현진 선수의 등 뒤의 이름을 보고 있는 나를 가리켜 한 말은 아닐까? 욥이 “내가 괴물이니이까?”(욥 7:12)라고 질문한 것이, 오늘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며 핏대를 세워 외치고 있는 자신에게 해야 할 질문같이 느껴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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