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북한은 얼마나 심각한 식량난에 처해 있는가. 2300만명이라는 국민
대다수가 기아선상에 놓여 있다는 것은 사실인가". 이것이 우리들의 솔직한
의문이다. 연일 들려오는 북한소식을 들으면서도 "이것이 과연 사실일까"하
고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금주부터 본지가 연재하는 이 글은 북
한 식량난과 관련, 정확하고 많은 소식을 들을 수 있는 두만강 일대 북한과
중국 국경지대에서 취재한 내용을 있는 그대로 게제한 것임을 밝힌다. <편
집자 주>
"올해까지 인민의 40%가 죽고 내년에는 개도 찰떡을 들고 다닌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은 탈북자들로부터 흔하게 듣는 북한내 소
문이다. 인민의 40%가 죽은 내년에는 사람이 없어 개가 찰떡을 먹을 만큼
쌀이 남아돈다는 극도의 비관적인 유행어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유행어가 북한내에서 나돌기 시작한 것은 벌써 3년전부터다.
5월 14일 중국 길림성 조선족 자치주 용정시 개산둔이란 국경마을에 숨어든
탈북자 부부의 증언이다.
"3년전부터 정상적인 배급이 중단됐다. 3년 동안 우리가 당으로부터 받은
배급은 전부 다 합쳐야 5개월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도 작년부터 '자체
해결'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개인재산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배급중단은 곧 죽음을 의미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인인 정아무개(34·함경남도 명천탄광 광부)씨
"3년전부터 숯하게 죽어 나갔히요"라고 당시를 회상하고 "그러니 완전 배급
이 중단된 작년 상황은 말해야 뭣합니까"라며 애써 대답을 회피했다.
남편인 김아무개(34)씨는 1년전 겪은 상황을 비교적 담담하게 털어놨다.
"제가 일하던 명천 탄광은 종업원이 1375명이었지요. 가족까지 4000명 정도
고 세대수로는 1000세대쯤 되지요. 3년전부터 죽은 사람이 한 500명 될 것
입니다. 요즘에는 더 심해 한달에 30-40명은 죽어나갈 거예요."
이들이 말한 죽어 나간 숫자는 곧 굶어 죽은 사람을 말한다. 굶어죽는 형
태도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풀만 먹다가 풀독에 올라 죽지요. 피나무 껍질, 느릅나무
껍질은 분쇄해서 먹는데, 계속 먹다보면 채 분쇄되지 않은 나무가시가 몸속
에 쌓여서 죽는 사람도 많아요."
한가족이 몽땅 거의 같은 시간에 몰사하는 일도 있다.
"대개 가족 중에 어느 한 사람이 죽으면 온가족이 다 죽는 경우가 많지
요. 우리 옆집의 경운데, 먼저 아버지와 큰아들이 죽고 하루 뒤, 딸아이와
가장 어린 남자아이가 죽었지요."
굶어 죽어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옥수수죽 한 그릇을 주지 못하는
것이 북한의 현재 실정이다.
"의사가 와서 죽어가는 사람 보고는 야, 이거 미음 한 숟가락만 먹이면
살겠는데…, 이러구만 있을 뿐입니다."
이런 처참한 기아상황에서 이 부부는 과연 어떻게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
할 수 있었는가. 이들의 생존방식은 아주 원시적이면서도 간단한 시장경제
체제를 이용한 것이었다. 즉 물물교환과 산지에서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물
건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방식으로 하루하루 근근히 생계를 유지했다.
"술을 빚어서 100리나 떨어진 바닷가까지 걸어가서 어부들과 이면수 몇마
리와 바꿨지요. 그 이면수를 가지고 돌아와서 시장에서 팔면 하루 먹을 식
량 살 돈이 남지요."
3년전부터 중단된 배급, 집단적인 기아사태가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를 송
두리 채 흔들어 놓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북한은 이미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시장이 번성하고 밀수와 고리업자들이
횡행하고 있다.
"시장이 번성하는 통에 화교들이 많은 돈을 벌지요. 또 당간부들은 여전
히 많이 먹고 있구요. 주민의 20%가 그들이고 나머지 80%는 굶주리는 사람
입니다."
한편 이들의 증언 외에 수시로 북한을 드나드는 조선족 동포들 중에는 훨
씬 충격적인 실상을 목격한 경우도 많다. 연길시의 조선족 동포들 중에는
훨씬 충격적인 실상을 목격한 사람이 많다. 연길시의 유력한 조선족 여성인
50대와 김아무개씨의 증언이다.
"한 남자가 평양남도 개천군에서 함경북도 남양까지 열차가 오는 6일 동
안 자기 손으로 시체 27구를 열차 바깥으로 던졌다고 말하더군요. 당시 그
남자를 만난 남양역엔 온통 며칠 굶어 움직일 힘조차 없는 사람이 가득했어
요."
북한 주민들이 최근 대량으로 열차를 타고 중국과의 국경지대로 이동하는
것은 바로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몰래 국경을 넘거나 중국에 사
는 친척을 만나 얼마간의 식량을 얻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곤 한다. 평양
에서 남양까지 오는 수일 동안 열차승객들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친척을 만
나 식량을 구할 희망 하나로 버티기 일쑤다. 그러다가 열차 내에서 죽는 사
람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열차 승객들이 대량으로 죽는 사태는 황장엽씨의 망명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북한당국은 황장엽 망명 발표 이후 국경 검문을
강화하고 북한인들의 해외친척 방문을 일체 불허했다.
때문에 수일에 걸쳐 아무것도 먹지않고 열차를 타고 국경까지 왔던 이들
이 다시 되돌아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들 수천명은 다시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길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이들은 전했다.
황비서가 조국통일을 위해 한몸 바치기 위해 망명을 결심했다고 하지만
정작 북한 주민들의 죽음을 재촉하는 한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중국연변=이승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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