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훈 목사의 초량이야기]

어느 땅이든 별명이 하나씩은 있는 것 같다. 티벳은 히말라야의 바람이 사시사철 불면서 ‘바람의 땅’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캄차카는 화산들이 지금도 연기를 뿜고 활동하면서 ‘불의 땅’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초량엔 무슨 이름 하나를 갖다 붙이면 좋을까? 필자 생각에는 ‘골목의 땅’이 잘 어울리겠다. 골목이 없는 데가 어디 있겠는가마는 초량에는 마치 실핏줄처럼 골목들이 이어져있다. 골목이라는 실핏줄로 사람들이 흘러 다니면서 초량이라는 몸뚱이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내왔던 것이다.

‘좁다란 골목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대고 걸어갑니다’라는 동요가 있다. 초량에는 우산들이 이마를 마주대기는커녕 이마를 서로 비켜주면서 걸어야 하는 좁은 골목이 참 많았다. 골목이 좁은 만큼 양쪽에 늘어선 집들도 좁았다.

초량의 골목들은 마을이 건강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능한 실핏줄과도 같은 존재이다.
초량의 골목들은 마을이 건강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능한 실핏줄과도 같은 존재이다.

목회 초창기에 골목을 따라 서있는 성도들 집에 심방을 가면서 몇 번을 놀랐다. 골목이 아주 좁고 복잡하다는 것에 놀랐고, 어떻게 저런 골목을 통과해 들여놓았는지 집안에 큰 장롱이 있고 냉장고가 있다는 것에 놀랐다. 또 그렇게 큰 된장 단지는 어떻게 들여놓았을까? 세계적인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왔다간 느낌이었다.

그 시절 초량사람들은 남들 눈에 비좁게만 보이는 통행로에다가 평수(坪數)도 옹색한 집에 살았어도 행복했다. 역설적이지만 골목 때문이었다. 골목은 단순히 사람들이 오가는 좁은 통로가 아니었다. 이 집에서 나온 사람과 저 집에서 나온 사람들이 골목에서 만나고, 이 골목에서 나온 사람들과 저 골목에서 나온 사람들이 좀 더 큰 골목에서 만났다. 만나면서 얼굴을 익히고 이름을 알아갔다. 골목을 벗어날 때까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다가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었다. 또한 골목 어느 구석 조금 넓은 빈 땅엔 엄마들끼리 모여앉아 남편과 말 안 듣는 자식들 흉을 보면서 가볍지 않은 위로를 얻곤 하였다. 이게 초량의 골목이었다.

우리교회에는 알콩달콩 살아가는 신실한 집사 부부가 있다. 각자 어린 시절, 학창시절을 초량에서 보냈고 서로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다. 이건 비밀스런 이야기인데, 이들 부부의 쑥스러운 첫 번째 입맞춤이 있었던 곳도 초량의 한 골목이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렇듯 초량의 골목은 사랑과 추억이 샘솟고, 유유히 흐르는 생명 가득한 샛강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이런 초량의 골목이 많이 변해버렸다. 언제부터인가 골목은 무서운 곳, 걷지 말아야할 곳이 되어가고 있다. 한낮에만 사람들 소리가 나지, 밤에는 길고양이의 으스스한 울음소리만 있고 인기척은 거의 없는 골목이 되어버렸다. 초량의 골목은 지금 우리사회의 현주소를 잘 말해준다.

그래서 그런지, 관공서에서는 골목을 넓힌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공사를 한다. 덕분에 골목이 넓어졌다. 하지만 넓어진 골목은 더 이상 골목이 아니라 거리요, 도로가 된다. 골목을 다니는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익히고 말을 트면서 길동무가 된다. 하지만 거리와 도로에서는 사람들이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지 못하고, 대신 자동차와 자동차가 마주 달린다. 골목은 사람을 위한 길이요, 도로는 기계를 위한 길이다.

어떤 분의 말처럼 골목의 붕괴와 철거가 도시의 비극, 나아가서 우리사회의 비극의 시작이리라. 한 때 한 마리 천 원 하던 동해바다 오징어가 사라진다는 뉴스도 충격이지만 ‘초량에 골목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은 참으로 우울하다. 초량의 골목들을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나?

실핏줄 같고 샛강 같은 초량 골목으로 다시 사람들이 흐르고, 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흐르고, 추억도 흐르면 참 좋겠다. 골목이 건강하게 회복되려면 시멘트와 불도저가 필요한 게 아니라 개개인의 가치관과 윤리의식,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정신이 모두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골목의 회복이 인간다움의 회복이며, 인간다움의 회복이 골목의 회복으로 이어진다’는 말은 전적으로 옳다. 오늘, 초량의 골목을 보면서 우리나라 모든 골목이 회복되고 나를 포함한 국민 모두의 인간다움이 회복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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