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목협 열린대화마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3·1운동 100주년’을 주제로 이만열 박사와 윤경로 박사 등 저명한 학계 인사들을 초청해 발제를 듣는 시간이었다. 발제 후 질의응답 시간에 자신을 목사로 소개한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입을 열었다. 질문도 아니고 3·1운동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했다. 사회자가 “주제에 맞는 이야기만 해 달라”고 하자 마지막 한 마디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만열 박사님은 공부를 더 하셔야겠습니다.”

대표적 지식인으로 국사편찬위원장까지 지낸 이만열 박사가 공부를 더 해야 한다니? 설령 부족한 사람이 강사로 나섰다 해도 당사자를 앞에 두고 ‘지식이 일천하다’ 지적하는 것은 토론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청중들은 웅성거렸고 분위기는 일순 각이 서기 시작했다.

최근 교계의 세미나와 토론회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보통 질의응답 시간에 그렇다. 예전에는 질문이 많지 않아 썰렁하고 민망한 시간이 많았다면, 요즘에는 ‘작정하고’ 온 사람들이 많아졌다. 특히 예민한 부분인 가짜뉴스 동성애 이단 등의 이슈에 토론의 방향과 반대되는 질문을 공격적으로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자연히 현장은 냉각되고, 청중들의 얼굴은 찌푸려진다. 한번 돌아선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어 토론회는 급박하게 종료된다. 나중에 보면 서로 목소리가 높아져 볼썽사나운 모습이 여과 없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결국 토론회의 본질은 사라지고 이상한 질문만 남는다.

한목협에서도 이만열 박사는 양해를 구하고 중간에 자리를 떴다. 아마 일정상의 이유 때문이었을 거라고 추측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너무 불쾌해서 견딜 수 없다’라고 했어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남은 사람들은 이만열 교수의 이야기를 더 듣고 질문할 기회를 잃었다.

교계에 성숙한 토론문화가 정착되길 기대한다. 내 편과 네 편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며 연합된 결론을 도출하는, 서로의 주장에 흠집을 내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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