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초량의 터줏대감?
(9) 초량의 터줏대감?
  • 김대훈 목사(부산 초량교회)
  • 승인 2019.01.1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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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훈 목사의 초량이야기]

‘터줏대감’이라는 말이 있다, ‘터’는 마을이나 공간을 가리키는 순 우리말이고, ‘주(主)’는 주인을 가리키는 말이며, 대감은 옛날 높으신 대감마님을 뜻한다. 결국 터줏대감은 그 동네에서 가장 오래 머물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초량에는 터줏대감이 사람이 아니라 놀랍게도 나무인데 이름 하여 ‘귀신나무’다. 귀하게 대접받는 몸이다. 나이도 워낙 오래 되어서 이 나무보다 더 오래 초량에 살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앞으로도 주민등록 앞자리 번호가 19세기 말쯤으로 시작되는 사람이 아니면 ‘대감’자리를 찾아오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 초량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던 팽나무. 지금은 베어져서 잔해만 남아있다.

사실 초량(草梁)은 이름 그대로 풀들이 무성한 동네였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와 6·25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몰려온 사람들이 우산 자기부터 살아보겠다고 풀과 나무들을 다 없애고, 그 자리에 집을 지었다. 조선시대 사화(士禍)처럼 초량의 나무들이 사약을 받고 모두 쓰러졌는데, 그 와중에도 기적 같이 생존한 존재가 이 귀신나무다. 그런데 귀신나무는 그 수령에 비하여 키가 그다지 크지 않고 몸통도 굵지 않다. 하도 척박한 땅에 뿌리를 박았던지라 몸을 제대로 키울 수가 없었다. 더욱이 자리 잡은 곳이 하필 골목길 옆, 집들이 빼곡한 곳이라 이제 막 쉰 살이 넘은 담양의 메타세쿼이아처럼 멋있지도 않다. 초량의 얽히고설킨 사연들을 밤낮으로 듣느라 심신이 고단하여 멋 부리며 자랄 틈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식물도감에도 없는 이름인 ‘귀신나무’가 되었을까? 원래 이름은 팽나무다. 떠돌아다니는 두 가지 전설이 있는데, 하나는 오래 전 누군가가 이 나무에 목을 매달고 죽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 나무를 귀신나무라고 불렀단다. 죽기는 사람이 스스로 죽었는데, 귀신이라는 오명(汚名)은 나무가 뒤집어 쓴 것이다. 많이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는 바람과 관계되어 있다. 부산 앞바다에서 만들어진 바람이 초량 언덕으로 올라오면서 복잡하고도 좁은 골목들을 만나게 된다. 골목들을 돌면서 나오는 바람은 아주 거세다. 이렇게 거센 초량바람이 터줏대감 나무를 만나면서 소리를 내는데 ‘귀신 우는 소리 같다’고 하여 애꿎게 ‘귀신나무’라는 명찰을 달게 되었다. 결국 인간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이름인 셈이다.

나무에게 미안하단 생각이 든다. ‘팽나무’라는 예쁜 이름이 있는데 인간들 마음대로 ‘귀신나무’라는 흉측한 이름을 붙였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 나무는 초량의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닮았다. 자기 이름은 뒤로하고 세상의 누군가가 붙여준 이름인 ‘윗집 과부’, ‘파란대문 집, 병든 아들’, ‘개 키우는 집, 폐지 줍는 노인’ 등등 말이다. 자기 이름이 불리어지지 않는 사람은 자존감이 낮고 행복해지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기도가 하나 생겼다. 귀신나무도 원래의 제 이름을 빨리 찾고, 초량의 사람들도 그들의 아름다운 존재가 담긴 이름이 자랑스럽게 불리는 날이 빨리 오기를.

여전히 사람들은 이 나무를 지나가면서 조심스러워한다. 나무를 만지는 것도, 닿는 것도, 쳐다보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 같다. 심지어 지나가면서 깍듯하게 머리를 조아리는 할머니도 있다. 나무는 얼마나 답답할까? ‘저는 팽나무에요. 귀신나무가 아니고요, 팽나무랍니다’라고 외치는데, 인간은 전혀 듣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그 나무가 뻗어있는 아랫집에 우리 교회 노총각이 살고 있다. 가난하게 자랐고 부모를 일찍 떠나보낸 친구라 그 집을 싸게 세 얻어 살고 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의 걱정과는 달리 아주 씩씩하게 잘 자고,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노총각은 집에서 나오면서 사람들을 만나면 ‘샬롬!’이라고 인사까지 한다. 이렇게 나무는 나름 귀하게 쓰임 받고 있다. 초량사람들은 말한다. “예수 믿으면, 귀신나무도 괜찮은 갑다.”

오늘도 초량의 터줏대감 팽나무는 골목을 타고 휘감고 올라오는 바람에 앙상한 가지들을 부비면서 귀신의 노래가 아니라, 창조주가 만든 차가운 겨울의 노래를 힘껏 부르고 있다.

(이 원고는 두어 달 전에 초안을 잡고서 대략 작성해 두었다. 하지만 기사가 나가기 2주 전 쯤 귀신나무집이 팔리면서 새로운 땅 주인이 건축을 하려고 집터를 정리하였다. 이에 ‘터줏대감’은 전기톱을 맞고 명을 다했다. 지금은 그 자리에 나무가 없다. 안타까운 부고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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