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호 목사(동산교회)

▲ 남서호 목사(동산교회)

고교시절 동성연애로 에이즈에 걸린 김훈(23·가명) 씨가 한국에이즈연맹 주최 특별강연회에 참석, 학생 학부모 교사들에게 강연했다. 김 씨는 강연에 앞서 공개증언의 1차 목적은 고교생들에게 에이즈에 관한 경각심을 심어주는 것이라며 그러나 그늘에 숨어 지내는 감염자들에게도 힘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고2 때 친구와 장난을 친 것이 동성애의 덫에 걸린 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고교 졸업 후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서울 종로구 낙원동 술집을 드나들며 외국에서 살다온 교포 등과 동성애를 하다 에이즈에 걸렸는데 그 경로를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올바른 성의식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김 씨는 에이즈 감염 사실을 통보받고 가족들의 냉대 속에서 호프집 카페 막노동판을 떠돌다 에이즈연맹의 자원봉사자로 나서 일해 왔다. 이에 앞서 에이즈감염자 모임 ‘희망나눔터’의 김형철(가명) 회장은 대한에이즈협회 주최 세미나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음지의 감염자들이 양지로 나올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성애자들이 서서히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고 있고 더 나아가 성 소수자의 인권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진보적인 정치인이나 예술인 그리고 학자들은 맞장구를 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그들의 아픔을 우리가 가슴으로 수용하고 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사회 개혁의 선전의 도구로 활용하도록 우리는 절대 방치할 수 없다.

동성연애는 같은 성의 사람 곧 남성 대 남성, 여성 대 여성의 관계에서 성적 만족을 얻는 것으로서, 동성연애자가 남성일 경우에는 호모(Homo) 여성들일 경우에는 레즈비언(Lesbian)이라고 부른다. 필자가 미국 상담실에서 본 것은 다수의 동성연애자들이 사회적으로 문제없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동성연애를 정신병의 일종으로 보지 않고 단지 자신의 동성애적 경향에 대해 불안, 우울, 기타 적응에 문제가 있을 때 이를 하나의 정신질환으로 간주하는 경향이었다.
동성연애에는 세 가지 수준이 있다.

그 첫째는 잠재수준이다. 이성 교제를 통해 결혼해서 자녀도 낳고 살며 성적으로는 극히 정상으로 보이면서도 동성연애적인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때로는 이성에 대한 흥미가 감소되거나 이와 반대로 이성에 대한 흥미가 증가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성교 불능, 불감증, 강박적 수음 등의 증상이 부수적으로 나타난다.

둘째는 소극적 수준이다. 적극적인 동성연애자의 자극이 있을 경우에만 동성연애 행위를 하며 소극적인 역할을 한다. 이들은 정상적인 이성 관계도 가능하며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고 살 수도 있다.

셋째는 적극적인 수준이다. 이 수준에 속하는 사람은 남들에게도 동성연애 행위를 하도록 권하며 동성 강간까지도 한다. 이 수준의 동성애자들은 이성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으며 심지어는 이름까지 바꾸는 일을 한다.

정상적인 성적 적응과 동성애에 이르는 과정상에서는 다양한 정도의 개인차가 있다. 체격이나 인격적인 특성이 동성애와 특히 관련될 수도 있으나 이런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야말로 남성적으로 잘 생긴 남자도 동성애자가 될 수 있고, 아주 여성적인 여자가 동성애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동성연애에 있어서 성적 반응은 이성간의 행위에서와 유사하며, 지속적인 동거 생활이 되기도 한다. 최근 동성연애가 후천성 면역 결핍증(에이즈)의 발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감소추세는 아니다.

동성연애자들은 그들의 수가 다수화 되는 지역에서는 이를 합법화하고자 하는 노력을 꾸준히 벌이고 있지만 그러나 아직까지 사회의식은 이를 용납하지 않고 있다. 동성애는 고대로부터 계속 존재했으나 그것의 성행은 언제나 성의 문란으로 이해되었고 곧 그 사회의 파멸이 임박했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성경이 전해주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 성의 유황불 심판(창19장), 역사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폼페이시의 멸망 등은 동성애와 매음으로 인한 성의 문란함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결과였다.

동성연애자들의 숫자는 날로 늘어가고 있고 사회 전 영역에서는 그들의 인권과 권한에 대하여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들에게 특권을 주는 것 같은 느낌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그들을 옹호하고 양성화 할수록 동성애자들은 늘어만 간다는 사실이다. 지금 중학생들이 동성애자가 될 가능성이 30%를 넘어서고 있다. 나이가 어릴수록 동성애자에게 대한 수용도가 높아가고 자신이 동성애자 되고자 하는 욕구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 인권위에서는 한국이 동성애자들에 대한 역차별 정책을 버리고, 그들을 또 하나의 성적 차이로 받아들일 것을 연일 요구하고 있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에 대한 새로운 법안을 만드느라고 난리다. 진보적인 교육감이 있는 곳에서는 그 변화가 이미 한계가 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마치 제어장치가 없이 달리는 기차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교회는 이러한 혼란 속에서 견지해야 하는 하나의 원칙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을 사랑하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도움의 자원들로는 교회 내의 자원자들의 봉사와 그들을 돕기 위한 상담과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는 공동체의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나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의 올바른 모습으로 인도해야 한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