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포럼 프로그래머>

생명이 살 수 없는 우주 공간에서 조난당한 우주인이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는 과정을 생생하고 긴장감 넘치게 보여 줬던 영화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영화 <로마>로 돌아왔다. <그래비티>는 지구와 떨어진 죽음의 공간 우주에서 삶이 있는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근원적인 힘 중력, 곧 서로를 끄는 ‘관계 맺음’에 관한 철학적 서정시였다. <로마>는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의 관계가 처음 시작되는 가족을 끌어당기는 힘인 ‘사랑’을 쿠아론 감독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여 그려낸 개인적 서사시다.

<그래비티>에서 쿠아론 감독은 그의 평생 영화적 동지인 에마누엘 루베스키 촬영 감독과 함께 당시 영화산업이 구현해 낼 수 있는 최첨단의 기술과 3D 스크린으로 공간과 시간을 캐릭터화하고 시각화하여 관객에게 전달했다. 이번에는 그가 본인의 경험을 시나리오로 써 직접 카메라를 잡아 흑백필름의 이미지로 담아내고 편집하여 그야말로 디렉터로서의 역할을 오롯이 감내했다.

<로마>는 올해 2018년 베니스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이기도 하다. <로마>는 우리가 아는 이탈리아의 로마가 아니다. 멕시코에서 나고 자란 쿠아론 감독이 살았던 멕시코시티 근처의 도시, 정확히는 ‘콜로니아 로마’다. 영화는 1970년대 초 이 지역에서 거주하는 멕시코 중산층 ‘페페’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주택과 주택 사이를 지붕이 없는 다리 형식으로 서로 연결하여 주택에서 밖으로 나가는 주 복도이자 때론 차고지로 쓰는 코리도어 형식의 독특한 주거형태에서 엄마와 아빠, 사남매와 할머니, 보모 ‘클레오’와 ‘아델라’가 산다.

클레오는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 아이들을 깨우고 집안일을 시작한다. 영화는 이들의 삶을 가만히 카메라로 응시하면서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조용하고 일관된 시선으로 응시한다. 이들 삶의 대부분이 이 집에서 일어나는 순간들이다. 그래서 영화는 처음 인트로에서 주 복도를 물로 청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반복적으로 물거품이 일어나는 바닥에 공교롭게도 물에 비친 하늘은 이 주택의 옥상을 비추며 건물과 건물 사이의 하늘에는 비행기가 유유히 지나간다. 일상이다. 1970년 멕시코의 일상이다.

클레오의 가족(클레오는 보모이지만 이들의 관계는 가족과 같다)이 사는 일상이 쿠아론 감독의 카메라에 켜켜이 잡혀 관객에게 전달될 때, 그들의 일상은 나의 일상으로 겹겹이 쌓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서로 서로 연결하는 이 독특한 구조의 건물 형태는 가족의 형태가 자연스럽게 사회로 이어지고 정치로, 우리의 일상의 삶으로 계속된다. 아빠 안토니오가 퇴근하여 포드 갤럭시를 몰고 주 복도로 들어설 때, 그 큰 차가 다치지 않도록 용의주도하게 조종하여 내리는 아빠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에선 누가 이 집의 주인인지를 알 수 있다. 또 클레오의 남자친구 ‘페르민’이 그의 무술 실력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클레오에게 자랑하는 장면에서 시대의 폭력, 남자의 폭력을 경험한다.

반면에 여자는, 엄마와 클레오는 모두를 사랑으로 보듬는다. 여름 어느 해변에서 온 가족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로마>의 인상적인 포스터는 영화를 본 후 가장 강렬하게 남는 이미지일 것이다. 쿠아론 감독은 인간의 관계와 사랑을 탐구하는 여정을 계속해 나갈 것으로 보이며, 나는 적극 지지한다. 영화는 여느 때처럼 주택 지붕 위로 지나가는 비행기를 비추며 끝난다.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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