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훈 목사의 초량이야기]

‘왜관(倭館)‘하면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을 말한다. 옛날 대학 동창 가운데 한 녀석이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왜관에서 온 길동’이라고 말했던 게 떠오른다. 왜관에서 온 ‘요시무라’가 아니라 왜관에서 온 ‘길동’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다가오면서 웃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출신이었다. 그런데 부산에도 ‘왜관’이 있는데, 원래 이름은 ‘초량 왜관’이다.

부산은 일본과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예부터 왜적이나 왜구들의 앞마당과 같은 곳이었다. 부산이 앞마당이라면, 앞마당 중의 앞마당이 초량이었다. 이걸 입증하는 역사 흔적이 바로 봉수대다. 초량 위쪽 산복도로를 품고 있는 산이 구봉산인데, 구봉산 꼭대기에 봉수대가 있다. 봉수대는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꽃으로 정보를 전달하였던 통신수단인데 특히 적들의 침입을 신속히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실제로 구봉산에 올라 봉수대가 있었던 자리에 서보면 아래쪽에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니, 그 용도가 일본에서 건너오는 왜구들을 막기 위한 것임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그 옛날 초량 사람들이 놀라서 뛰는 가슴으로 얼마나 많은 연기를 피워 올렸을까?

▲ 일본 왜적들의 침입을 신속히 알리는 역할을 한 부산 구봉산 봉수대.

그 옛날 일본은 나름 살기 위하여 조선을 부지런히 찾았다. 무역과 외교를 위해서 많은 일본인들이 빈번하게 드나들었다. 그래서 조선정부는 일본인들을 위한 거점공간을 허락하는데, 그게 왜관이다. 1609년 ‘두모포 왜관’이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하지만 입지가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하여 1678년에 이전하면서 ‘초량 왜관’이 세워졌다. 오늘날 용두산공원 부근이다. 그땐 거기도 ‘초량’이었다. 참고로 ‘두모포 왜관’은 초량 왜관이 새로 세워지고 이전하면서 구관(舊館), 혹은 고관(故館)으로 불려졌다. 지금도 그곳은 ‘고관 입구’라는 이름을 가지고 초량동 끝자락에 있다. 신관이든 고관이든, 초량에는 ‘왜관’이 있었으며 따라서 초량은 그 옛날 일본을 먹여 살린 동네였던 셈이다.

그리고 고관 입구에서 부산역 쪽으로 한 200m쯤 내려오면 현 일본영사관이 있다. 영사관 앞엔 ‘소녀상’이 놓여있는데 누군가는 소녀상에게 털실 목도리를 감아주고, 또 누군가는 꽃 한 송이를 놓고 간다. 일본 정치인들의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쉬운 답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아니 알면서 못 하는 것 같다. 우리민족은 그리 모질지 않아서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하면 칼 든 손도 내려놓는데, 일본인들은 진심어린 사과를 모르니 미운 생각이 든다.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미개인’이라는 말이 있다. 이런 일본을 욕하다가도 ‘나도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할 줄 모르고 미안해할 줄 모르는 미개인은 아닌지’ 생각하면, 하던 욕(?)이 쑥 들어간다.

흥미로운 게 있는데, 일본영사관과 빌딩을 사이에 두고 큰 동상 하나가 서 있다.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있는 위용 넘치는 장군의 모습인데, 이름은 ‘정발(鄭撥)’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왜군은 바로 ‘부산진’성으로 쳐들어왔다. 정발 장군은 총책임자였고, 왜군 1만 8000명과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정발 장군의 용맹과 희생에 감격한 백성들도 최후 항전을 벌이다가 모두 죽는다. 그때 정발의 나이 마흔이었다. 장군의 숭고한 정신을 기려 동상을 세웠는데, 초량 대로변에 우뚝 서 있다. 옛날로 치면 장군이 죽음으로 지키려고 했던 부산진성의 남쪽 끝자락에 해당된다.

나이 마흔의 장군 정발의 장렬한 전사,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코끝이 찡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오늘도 정발 장군은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칼을 빼서 앞으로 달려갈 기세다. 바로 옆 일본영사관의 심기가 편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단체의 청소년들이 정발 장군의 동상을 찾아와서 행사를 갖는다. 지도자의 선창으로 따라서 외치는 그들의 소리가 들린다. “내가 정발이다. 내가 정발이다.” 우리 모두가 정발이면 누가 감히 우릴 얕보겠는가? 까치 두 마리가 정발 장군의 동상에 앉아서 깍깍 소리를 지르고 있다. 할머니들 말처럼 좋은 일이 있으려나. 일본의 흔적이 가득한 초량에서 나도 기도의 칼을 뽑아든 정발이 되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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