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80년이 지났음에도 일본은 우리나라는 물론 당시 피해를 입힌 나라들과 역사적 사실을 들추고 감추는 숨바꼭질과도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힘의 우위에 있는 국가라면 대부분 자국에 유리한대로 역사를 틀려고 한다. 광주 5·18민주화운동, 제주4·3 등 국내적으로 아픔이 있는 역사적 실체에서도 감추거나 왜곡하려는 일들이 존재한다.

역사는 이토록 준엄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고, 강압으로 왜곡하려 해도 언젠가는 들통이 나 왜곡한 자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바로 역사다. 그래서 기억의 산물인 역사는, 다시금 기억하고 계승하는 것이다.

100주년을 맞은 3·1운동과 관련해 이를 기념하고자 분주함이 시작되었다. 매체만 봐도 3·1운동과 관련한 역사적 고증과 의미를 영상과 활자로 쏟아내고 있다. 어떤 곳보다 3·1운동 100주년에 관심을 쏟는 곳은 기독교인 것 같다. 100년 전 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진 만세운동은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주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계적으로, 교단적으로, 지역적으로 많은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의미 있는 역사는 마땅히 기념해야 한다. 기념을 통해 역사의 실체와 정신을 머리와 가슴, 그리고 활자와 영상으로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행사를 통해 기억이 저장되고 정신이 계승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멋들어진 행사에만 관심이 쏠려있는 지 살펴야 한다.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기독교는 더 이상 외래종교가 아닌 애국애족의 공공성을 가진 종교로 각인시켰다. 100년이 지난 지금의 기독교는 도리어 공공성을 상실한 종교로 힐난을 받고 있다.

이런 때에 우리 기독교는 3·1운동의 그 무엇을 기념해야 할까. 행사 너머의 삶과 실천이 뒤따라야지만 진정한 기억의 계승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지금도 내일에는 역사가 되어 평가를 받는다. 이런 역사의 준엄성을 의식하며 실천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야말로 100년을 맞은 3·1운동을 기념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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