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새해가 밝았다. 매양 맞이하는 새해지만 올해는 유난히 조용하게 정초가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예장합동 신년하례회도 참석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실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열식의 진부한 특별기도자도 소수만 강단에 세우고, 하례회와 축사, 격려사, 각종 단체장들의 인사 순서도 ‘대표성’을 지닌 자만 초대하여 진부함을 쏙 뺐다. 오히려 진중하게 감사예배를 드리고 간결하고 깔끔하게 하례회까지 마쳤다. 사소한 것 같지만 굉장히 큰 변화다. 그만큼 총회는 제103회기 ‘변화하라’는 기조에 걸맞게 여기저기서 변화의 속도가 감지되고 있다.

제103회 총회가 파회하고 4개월이 흐른 지금, 변화는커녕 예년과 다를 바 없는 ‘말짱 도루묵이다’는 비아냥거림도 들린다. 그러나 냉정히 돌아보자. 이번 회기 총회는 마치 항공모함처럼 소리없이 진군하고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특별위원회 배정도 원칙에 입각하여 구성했고, 총회임원회도 조용하다. 특별한 이슈가 없는 것만 봐도 교단이 ‘정상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일부 여론의 수군거림에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총신대에 의한, 총신대를 위한, 총신대의 정치로 일관됐던 수 년 전의 아픔도 이제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총장 선출을 위한 로드맵이 발표되고, 학교도 정상화 단계에 있다. 다만 그동안 갈등을 빚어왔던 교수들간의 관계를 얼마만큼 회복하느냐가 관건으로 보인다. 아울러 학내 갈등으로 심한 가슴앓이를 했던 학생들을 치유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무리를 지어 어디든지 개입하여 이득을 취하던 이들도 행동반경이 줄어들었는지 총회본부 출입이 뜸하다. 교단 내에 이슈가 생기면 해결사를 자처하며 나서던 인사들도 좀처럼 활약상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번 회기의 옥의 티라 하면 지난 해 이월된 몇몇 노회의 갈등을 아직도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법 송사는 자제하고, 가급적 교단에서 슬기롭게 해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려면 총회임원은 물론이요, 재판국원이나 해당 특별위원들이 더 공의롭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 총회가 산다.

지금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소중하게 자기의 일을 할 때다. 교단 내에 별로 문제가 없는데 굳이 해묵은 것까지 끌어들여 문제를 삼을 필요는 없다. 비록 완전한 태평성대는 아닐지라도 올해 총회는 물 흐르듯이 흘러가면서 변화를 도모하는 또 다른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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