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문화부장관을 하셨던 남궁진 전 장관으로부터 들은 강의 내용이다. 이 세상에는 현자와 우자가 있는데, 우자는 가르쳐줘도 모르고 현자는 가르쳐주면 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르쳐주지 않는데도 싹을 보고 미래를 아는 사람을 명자라고 하고 싹이 보이지도 않지만 기미만 보고도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을 철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싹도 안 나고 기미도 안 보이는데 미래를 꿰뚫어보고 예측하는 사람을 선각자라고 한다는 것이다.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는다. 3·1운동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33인을 비롯해서 독립운동가들의 선각자적 혜안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들 역시 독립될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았지만 독립이 올 것을 꿰뚫어보고 예측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윤동주도 <십자가>라는 시에서 조국의 해방을 쫓아오는 햇빛으로 표현하지 않았던가. 아브라함은 더 그렇다. 갈대아우르와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간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모험의 세계이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 역시 선각자적인 영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과 인도를 따라 가나안으로 향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 특히 우리 총회에도 선각자적 영성이 필요하다. 고 백남조 장로님이 총신대 땅 2만 평을 기증하고 고 이영수 목사님이 양지 총신캠퍼스에 땅을 마련해 놓은 것처럼 우리에게도 선각자적인 혜안과 영성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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