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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3·1운동 100주년을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박창식 목사(달서교회·총회역사위원장)
▲ 박창식 목사(달서교회·총회역사위원장)

한국교회의 역사가 깊어지면서 기념해야 할 역사적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동안 부흥운동 100주년(2007년), 독노회 설립 100주년(2007년), 총회 설립 100주년(2012년), 신사참배 가결 80주년(2018년)을 보냈고 금년에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했다.

우리는 왜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들을 기념하는가? 과거를 거울삼아 오늘을 반성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 예들을 보면 단지 일회성 기념행사에 그쳤다. 아니면 역사를 현실 반전을 위해 수단화하는 오류에 빠지고 말았다.

3·1운동 100주년을 어떻게 지내야 할까? 분명한 것은 한국기독교의 현실이 단지 어떠한 기념식이나 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는 점이다. 기독교는 한국사회에서 점점 게토화되고 이질화 되어가고 있다. 100년 전인 1919년 당시, 전체 인구의 약 1.5%에 불과했던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한국 근대 최대의 민족운동이자 독립운동인 3·1운동을 주도했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성찰이 깊이 요구된다. 당시만 하더라도 기독교는 한국인들에게 외래종교요 서양종교로서 경원시 되었다. 그러던 것이 3·1운동을 지나면서 기독교는 비로소 민족종교로 인정받게 되었다. 기독교가 민족의 고난에 동참하고 자기비하적인 사랑을 이 땅에서 실천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한국기독교가 깊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음침한 옛집에서 뛰쳐나와 흔쾌한 부활의 빛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는 독립선언서의 한 구절처럼, 지금이야말로 한국기독교가 그간의 구태를 벗어버리고 100년 전의 만세를 고창하던 그 정신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때이다. 이 길만이 한국기독교가 다시 자기본질을 회복하고 민족과 세계 앞에서 선도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이다.

우리는 먼저 독립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선진들은 빼앗긴 조국과 신앙을 되찾기 위해 독립을 외쳤는데, 우리는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이 요구되는가. 시급한 것은 우리 안에 깊숙이 침투한 세속주의로부터의 독립이다. 무엇보다 지도자들의 성적 일탈과 금권선거의 타락상은 우리를 다시 깊은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선진들처럼 분연히 일어나 이 모든 것들을 떨쳐버려야 할 것이다.

둘째, 자유가치의 수호이다. 자유는 복음의 본질이다. 선진들은 자유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바쳤다. 자유의 복음으로 교회를 건설하기 위해 헌신하였다. 그 어떤 정권이나 이념도 이 나라와 교회에서 자유의 가치를 훼손할 수 없다. 한국교회는 피 흘리며 지켜온 자유를 끝까지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평화이념의 구현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와 부활로 모든 장벽을 허물고 참 평화를 주셨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분단으로 고통하는 한반도에 평화통일의 능력이 되고, 여러 갈등으로 불화하고 반목하는 한국기독교를 회복시키는 진정한 힘으로 작용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독립, 자유, 평화의 3·1정신 계승을 위한 선결과제는 3·1운동의 역사적 실체 규명이다. 그동안 국가는 3·1운동에 참여했던 개인들을 국가유공자로 포상했다. 하지만 3·1운동에 참여했던 단체, 특히 교회에 대한 관심은 거의 전무했다. 지금이라도 3·1운동에 참여했던 교회와 기독교인에 대한 전수조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자료에 의하면 3·1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기독교인들은 1440명의 장로교인을 포함해 무려 1979명이나 되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총회는 관심을 가지고 이들에 대한 자료 발굴과 연구를 꾸준히 수행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기독교사에서 민족과 소통했던 가장 소중한 자산인 3·1운동 정신이 계속해서 우리나라와 교회, 그리고 미래를 선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우리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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