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주님의 사역을 이야기 하는 곳이다. 이런 교회의 사역이 실적과 이익, 대가와 명예, 사회적 경제적 성공과 실패라는 일의 범위로 추락함으로서 제일 중요한 본질인 기도를 상실하게 되었다. 기도는 주를 향한 거룩한 사랑의 열망이다. 이것은 기독교 영성 수련의 기본이고 목표이다.

주께서 가르쳐주신 크고 첫째가는 계명인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 무엇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아닌가. 이것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우리 목회자가 추구해야 할 첫째 목표요 이것이 되어야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목회사역도 가능하기에 기도가 바로 목회의 근원적 힘이 되는 것이다.

목회에 성공하라, 실적을 올려라, 부를 축적하고 예산을 늘려라가 아니라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주님의 가장 기본적 요청이시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기도 아닌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메시아의 사역을 이루시는 과정의 첫째가 기도였다. 기도는 메시아 되심의 존재 양식이셨다.

주님은 빌립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 바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믿지 않느냐” 이러한 존재 양태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기도였다.

주님은 메시아 사역의 첫날이 지나고 다음날 새벽 미명 한적한 곳에 나가셔서 따로 기도하셨다. 가르치시고 전파하시며 고치시는 사역의 동력이 바로 기도였다. 메시아로서의 존재 양태 안에는 기도가 있었고 그 기도가 메시아로서의 본질적 사역을 감당케 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세대는 하나님과의 존재가 일치하는 것이 아닌 사랑의 일치가 필요하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삶이 우리에게서 가능해지려면 예수께서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는 누가복음 5장 16절의 말씀처럼 한적한 곳에서의 기도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적한 곳이 없는 목회는 이미 목회자의 본질을 벗어난 것임을 잊지 말자. 어떻게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해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길은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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