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최북단 ‘백령도’를 가다

북한 땅 장산곶이 지척인 두무진 마을
안보 불안 땐 합동소속 교회 강한 결속
남북화해 분위기 속 차분히 생업 진력
“수십 년 긴장했지만 조금씩 변하겠죠”


쾌속선으로 꼬박 4시간이 걸렸다. 기상 악화로 인천항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2시간 가량 대기를 했던 터라 백령도 용기포항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때가 훨씬 지난 시간이었다. 다행히 예상보다 파도가 덜해 멀미는 안했지만, 괜히 백령도가 외떨어진 곳이 아니었다.

여객선에서 내리는 수백 명의 승객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항구는 붐볐다. 승객들은 민간인과 군인이 반반쯤 됐는데, 하나같이 짐꾸러미가 가득했다. 백령도 주민들은 마중 나온 가족들과 뭍에서 가져온 생필품들을 나눠 들었고, 군대에 있는 애인과 자식을 면회 온 사람들은 얼마 후면 사랑하는 이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방이 무거운 줄 몰랐다.

▲ 서해 최북단 백령도 주민들은 남북화해 분위기가 평화통일로 이어져 남과 북이 서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두무진 포구에 어선과 유람선들이 정박해 있다. 바다 저편으로 북한 땅 장산곶이 보인다.

군인들은 주차장에 있던 군인버스 쪽으로 향했는데, 맨 뒤로 앳된 군인들이 줄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백령도에 배치를 받은 해병대 신병들이었다. 그제야 백령도가 우리나라 서해 최북단, 북한 땅인 장산곶과 불과 16km 밖에 안 떨어진 섬인 것이 실감이 났다. 신병들의 짧은 머리가 바닷바람에 바짝 움츠러들었다.

“겨울에 이렇게 좋은 날도 드물어요. 어제도 날씨가 나빠 결항을 했고, 내일 오후에는 풍랑주의보가 뜰 거라고도 하던데….”

마중 나온 김태섭 목사(두무진교회)는 겨울에 백령도 드나드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데 날짜를 잘 맞췄다며, 그래도 초행길에 멀미를 많이 했을까봐 걱정이었다고 했다.

▲ 백령도에는 마을마다 교회당이 세워져 지역 복음화에 힘쓰고 있다. 두무진교회 김태섭 목사가 최근의 백령도 분위기를 설명하고 있다.

자동차로 용기포항에서 안쪽 길로 20여 분을 달리자 군부대 철망 너머로 다시 바다가 보였고, 조금 더 달리자 아담한 두무진 마을이 나타났다. 바다 너머 장산곶을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백령도 북서쪽의 작은 마을. 오랜 세월 비바람과 파도가 깎아 만든 바위 절경도 볼거리라 백령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마을이라고 김 목사가 말했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횟집들이 늘어선 두무진 포구에는 작은 어선들과 두무진 관광유람선이 파도에 흔들리고 있었다.

“열여섯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뱃일을 했어요. 봄에는 까나리를 잡고, 다른 때는 통발로 노래미나 우럭, 소라 같은 것을 잡죠. 옛날에는 홍어도 많이 잡았는데, 중국 배들 들어오고부터는 씨가 말랐어요.”

포구에서 만난 육십 대의 박세안 선장은 30대 베트남인 선원 한 명을 데리고 두무진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았다. 물때를 따라 배를 몰고 나가 통발을 거둬들일 때면 물고기마냥 가슴이 파닥거렸다. 잡힌 고기들 가운데 횟감은 아내 가게에 들이고, 나머지 고기들은 육지에 사는 지인들에게 택배로 판매를 하고 있는데, 겨울 들어서는 통 수확이 신통찮았다.

그에게 두무진 앞바다는 고마우면서도 아쉬운 곳이다. 백령도에서 장산곶까지는 16km지만 백령도 어선들이 조업할 수 있는 곳은 백령도 앞바다 2300m로 제한돼 있다. 고기 잡을 욕심에 조금이라도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근방에 있는 어업지도선에서 경고 무전이 날아들었다.

▲ 두무진포구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허정금 씨는 올해 들어 관광객들이 많이 늘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허 씨는 두무진교회에서 권사로 섬기고 있다.

“북한쪽에서는 어선이 안 나오고, 우리도 2300m밖에 못 나가니까, 가운데 바다는 수십 년 동안 고기를 안 잡아 황금어장이지. 거길 중국 배들이 드나들면서 고기를 잡아가니까 얼마나 속상한지 몰라요. 중국 배들이 많이 나올 때는 지평선에 틈이 안보일 정도였어요.”

관광객들에게야 북한 땅이 가벼운 풍경이지만, 백령도 사람들에게는 마음 편한 대상이 아니다. 어부들은 더해 지금에야 지피에스(GPS)를 비롯해 좋은 장비들이 있어 그럴 일이 없지만, 장비가 변변찮던 예전에는 해무에 가려 북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부리나케 나오는 경우가 흔했다. 박 선장도 “장산곶에서 북한 배가 다가오는데 겁이 나서 급하게 칼로 어망을 자르고 도망한 적도 있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무엇보다 백령도 사람들이 북한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건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던 그때 백령도 사람들은 백령도가 군사요충지로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다시금 실감했다.

당시 백령도 주민들은 앞장서 실종 장병 수색작업을 하는 군인들을 격려하고 위문했는데, 그 구심점에는 교회가 있었다. 백령도는 주민의 70∼80% 가량이 기독교인으로, 백령도에 있는 12개 교회는 특별기도회와 각종 섬김 활동에 함께 했다. 특별히 군인교회를 제외한 10개 교회는 모두 예장합동 인천노회 소속 교회들로 강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위문활동에 힘썼다.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던 김태섭 목사는 천안함 사건 이야기를 할 때면 꼭 하고픈 말이 있다고 했다. 언론에서 너무 호들갑을 떨었다는 것이다.

“군인 가족들을 빼고 천안함 사건으로 백령도를 떠난 주민들은 별로 없었어요. 백령도에서 인천으로 나갈 때는 적어도 2박3일 정도 있다오는데, 그러다보면 가방이 크잖아요. 그걸 보고 주민들이 단체로 피난을 가느니 어쩌니 하고 보도를 하니까 외지 사람들은 큰 일 난 것처럼 여기죠. 그 후로 1년 가량 관광객들이 안 들어와서 장사하는 분들이 피해가 많았어요.”

천안함 사건에 대한 기억도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썰물처럼 조금씩 흐려졌고, 백령도를 찾는 관광객도 하나둘 생겨났다. 게다가 올해는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화해 분위기가 더해져 예년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백령도에서 관광업을 하는 김복남 씨는 “주말에는 700∼800명 정도, 평일에도 300∼500명씩은 찾아온다”며 “관광객이 작년보다 두 배는 늘었다”고 귀띔했다.

그렇다고 남북화해 분위기에 마냥 들떠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안보 불안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두무진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허정금 씨는 “손님도 많아지고 당장은 좋지만, 갑자기 또 달라지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모쪼록 잘 대화가 돼서 평화롭게 통일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세안 선장은 지난 9월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두무진과 장산곶 앞바다 사이의 ‘공동어로구역 시범어장’에 대해서 “당장 육지에서 큰 배들이 올라올까 걱정이다. 백령도 배들은 크기도 작고, 어망도 약한데, 큰 배들이 쌍끌이 그물로 다 잡아가면 남는 게 없다. 공동어로구역을 하더라도 백령도 배들만 출입하도록 해야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통일도 좋지만, 당장의 생계걱정이 먼저인 게 우리네 현실이다.

“수십 년 동안 긴장 속에 살았던 사람들인데 금방 마음을 놓겠어요? 하나씩 하나씩 시간을 갖고 풀어가다 보면 달라지겠죠.”

두무진 포구를 떠나오면서 김태섭 목사가 말했다. 그러면서 옛날에는 백령도에 들어오려면 12시간을 배를 타야 했다는 이야기며, 남북통일이 돼서 직선길로 오면 인천에서 2시간 반이면 온다는 이야기며, 이런저런 백령도 주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김 목사의 말처럼 거센 바람에도 백령도를 오가는 바닷길은 줄어들었다. 두무진에서 장산곶 가는 길도 그렇게 줄어들 터였다.

어느덧 두무진 절경 너머로 해가 기울었다. 남한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는 섬, 백령도의 한 해도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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