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인간 세계에 오신 날,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과 자유를 위해서 탄생하신 성육신의 의의는 단회적 사건이 아닌 지속적 사건으로 우리 안에 존재한다. 성탄절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현현이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러한 성육신의 은총을 바울은 자기 비하로 이해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 ‘사람의 모양’, ‘죽기까지’ 라는 표현으로 자기를 비하하신 성육신의 은총을 증언하고 있다. 성육신은 임마누엘 사건이며 성육신은 죽으심을 위함이었다.

성경은 성육신의 의미에 대하여 “죄로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라고 하심으로 죄인들의 대속자로 성육신 하셨음을 말씀하신다. 태어날 때부터 대속의 죽음 때문에 태어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희생과 죽음의 언덕 너머에 생명의 은총이 있기에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고 죽으심으로 잃어버린 생명을 찾아주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성육신하신 성탄절 앞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을 드려야 한다.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사람들에게만 성육신의 은총이 임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우리에게 위에 것을 찾으라는 골로새에 보낸 서신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담아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기독교인들이 땅에 있는 음란 부정 사욕과 악한 정욕 탐심으로 가득해지면서 세속화라는 늪에 빠져 세상의 판단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님께서 성육신 하신 것은 비천한 인간의 삶을 존귀한 삶으로 바꾸시려는 데 있다.

성육신 신앙의 소유자는 날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사는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 성육신의 의미는 초현실이나 초역사가 아닌 내가 이 땅 위에서 주님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가지고 주님이 가라고 명령하신 그곳에서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것임을 기억하고 우리의 삶에 예수님의 인격을 드러내는 구현의 은총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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