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였던 기독교, 3ㆍ1운동 적극 주도”

이덕주 교수 “다양한 저항운동과 희생 통해 ‘나라 위한 종교’로 인식”

미래교회포럼(대표:박은조 목사)이 12월 3일과 4일 공주제일교회에서 ‘삼일운동 100주년과 한국 기독교’를 주제로 포럼을 진행했다.

이덕주 교수(감신대)는 ‘3ㆍ1운동에 나타난 기독교 권위와 지도력’이란 제목의 주제강의에서 “3ㆍ1운동 당시 기독교는 소수종파에 불과했지만 독립만세운동 준비 및 투쟁단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면서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보았다. 첫째, 기독교 지도자들이 종교적 경건과 실천을 보여 불신자 사회에서 존경심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째, 교회는 복음주의 신앙에 바탕을 둔 민족구원 의식과 실천을 해왔다. 기독교인들은 3ㆍ1운동 이전부터 다양한 노선과 방법으로 항일저항운동을 전개하면서 희생을 당했는데 이를 목격한 일반 시민사회는 기독교를 ‘나라를 위한 종교’로 인식했다. 셋째, 대화와 타협, 양보와 희생을 기반으로 한 종교연대를 실현했다. 독립선언이 성사되기까지 기독교, 천주교, 불교 사이에 긴장도 있었으며, 기독교 대표 내에서도 독립을 ‘선언’할 것인지, ‘청원’할 것인지를 두고 노선 차이가 존재했다.

▲ 미래목회포럼이 ‘3ㆍ1운동’을 주제로 마련한 포럼에서 이덕주 교수가 주제강의를 하고 있다. 이 교수는 3ㆍ1운동 당시 인구의 1.5%에 불과했던 기독교인들이 영적 권위와 지도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를 분석했다.

이덕주 교수는 “종교적 경건과 실천에 기초한 영적 권위가 복음주의 신앙에 근거한 민족구원으로 연결될 때, 기독교는 교회 영역을 넘어 종교연대와 사회연대를 이룰 수 있었다”면서 “그 과정에서 기독교인의 솔선하는 양보와 희생이 교회의 대사회적 영향력과 지도력을 향상시켰다”고 평가했다.

최재건 교수(연세대 은퇴)는 ‘삼일정신과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이란 제목의 주제강의에서 “3ㆍ1운동은 한국 역사에서 지도층과 일반 백성이 함께 일으킨 처음 혁명적 사건”이라면서 “기독교회가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3ㆍ1운동은 일어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3ㆍ1운동은 한국기독교 역사상의 대표적 민족독립운동이요 신앙운동이었다”면서 3ㆍ1운동은 대한민국은 건국의 정신을 이루었고 한편 건국에도 교회는 큰 역할을 감당했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3ㆍ1운동 당시 교회는 소수였으나 민족과 이웃과 하나님 앞에서 3ㆍ1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대한민국 건국에 앞장섰으며 사회적으로 공신력을 가졌다”면서 “오늘날 한국교회는 교인이 인구의 다수가 되도록 하는 외적 성장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본질적 면의 성장을 급선무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상규 박사(고신대)는 ‘3ㆍ1운동과 한국기독교’라는 주제강의에서 민족대표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길선주 목사를 살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길선주 목사는 이승훈과의 접촉을 통해 33인 민족대표로 가담했다. 그러나 민족운동은 그 이전부터 관여했다. 민족대표를 수락했으나 눈이 어두워 여행에 지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으므로 서울에 갈 수 없다고 판단했고 도장을 이승훈에게 위임하여 독립선언서에 날인하도록 했다. 그는 3월 2일 조선총독부를 찾아가서 자수했고 구금되어 1년 7개월간 투옥됐다. 투옥 전 그의 장남 진형은 105인 사건으로 1년전에 죽었고, 투옥 당시 그의 차남 진경은 평양감옥에 수감중이었고 어린 두 남매 진주와 진섭은 도피중이었다.

이상규 박사는 “길선주 목사가 독립운동에 소극적이었다는 오해와 비난도 있으나 그는 복음에 대한 열정과 함께 민족의 현실에 대해서도 동일한 책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면서 “독립운동 이후 그의 명성에 걸맞는 적극성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아쉬우나 그의 독립운동에의 참여는 의로운 선택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이번 포럼에는 주제강의 외에도 그에 버금가는 수준의 4개 영역별 강의가 있었다. 성경강해와 기도회 순서도 마련했다.

미래교회포럼 대표 박은조 목사는 “1919년에 한국교회 성도는 20만명 정도로 1700만 인구의 1.5%에 불과했지만 민족사의 고난에 깊이 동참했다”면서 “오늘 한국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함은 고난과 낮음의 자리를 함께 하지 못함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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