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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특집] 내 기억 속에서 꺼낸 그때 그시절 최고의 성탄선물

성탄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선물이다. 기쁜 성탄은 선물로 인해 그 의미와 기쁨은 두 배가 된다. 선물을 주고받음에 의미는 제각각이지만 소중한 마음이 담긴 것은 분명하다. 모든 선물이 그렇듯 의미가 부여된 것이라면 누가 뭐래도 그들에겐 특별함이다.
세월이 아득히 흘러도 생각나는 성탄선물이 있다는 건, 그건 단지 누군가에게 받은 물건이 아니다. 행복이다. 거기에는 누구도 경험하지 않은 유일무이한 추억이, 수많은 만남 가운데 유독 ‘그’와 ‘나’를 잇는 관계의 특별함이, 성탄절의 의미가 퇴색되는 각박한 현실을 깨고 진정한 성탄을 보내게끔 하는 신앙적 가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성탄선물이 기억 속에 있다는 것은 나그네 인생에 만나는 생애 최고의 선물이자, 행복임에 틀림없다.


■ 무명의 성도가 준 꽁보리밥과 된장국

▲ 김영담 목사
(96세·대구 동성교회 원로)

1950년 12월 20일, 대구동부교회에 출석하시는 어떤 성도님의 주택을 빌려 20여 명의 성도들과 동성교회 설립예배를 드렸다. 설립예배에 대한 기쁨도 잠시, 하나의 고민이 생겼다. 곧 다가올 성탄절 때문이었다.

그때를 기억하는 분들은 다 아실게다. 워낙 먹을 것이 귀한 때라 굶다시피 지내는 날들이 많을 시대임을. 그래도 성탄절인데 성도들과 성탄예배를 드리고 나서 함께 나눌 음식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애석하게도 찬밥 한 끼 나눌 형편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타교회 성도의 집을 빌려 교회를 시작했겠는가.

그저 눈물로 기도하며 지내다 성탄을 맞았다.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생전 처음 보는 성도 한분이 두어 가지 음식을 해 온 것이 아닌가. 예상 밖에 주어진 그 한 끼의 식사로 우리 교회 식구들이 감사하게 먹었던 일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 세상에 어떤 음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고 맛났다.

그때를 추억하며 글을 쓰는 지금도 너무 감사해 눈물이 흐른다. 어렵던 시절의 성탄절에 세상 최고의 맛을 선사한 음식은 다름 아닌 ‘꽁보리밥’, 그리고 ‘시래기 된장국’이었다.

■ 시린 마음 녹여준 검정색 명품 장갑

▲ 임진국 장로
(순천 지본교회)

예전의 성탄절은 요즘과는 사뭇 달랐다. 예전에는 성탄절이 되면 동네마다 교회 학생들이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성탄송을 불렀다. 인생에 가장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선물은 바로 그 성탄송을 부르던 시절에 받았다.

성탄절 새벽기도회를 마친 후 찬양대원들과 학생들이 구역을 나누어 교우들의 집을 찾아가 성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곧 환한 불이 켜졌고, 반갑게 맞아주는 분들과 ‘메리 크리스마스!’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방문한 집 중 하나는 평소에 나를 몹시 아껴주시는 권사님 댁이었다.

성탄송을 마친 후 따뜻한 식혜까지 대접받고 돌아 나오려는데 권사님께서 “진국아!”하고 따로 부르시는 것이었다. 그리곤 곱게 포장된 무언가를 내게 내미셨다. 고맙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감사의 인사를 짧게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받은 선물을 확인해보니 검정색 명품 장갑이 들어있었다. 평생 처음 받아본 고급 선물이었다. 한겨울인데도 맨손으로 다니며 손 시려하는 내 모습이 권사님 눈에 밟혔었던가 보다.

이후 학교에 갈 때나, 교회 갈 때나 겨울에는 늘 그 장갑을 소중하게 착용하고 다녔다. 권사님께서 장갑을 끼고 있는 나를 보시며 몹시 흐뭇해하시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지금은 천국에 계실 권사님을 떠올릴 때면 나도 또 다른 누군가와 아름다운 성탄의 추억을 남기고픈 소망에 사로잡힌다.

■ 전도사님이 주셨던 학용품, 그리고 꿈

▲ 정상이 집사
(덕소교회)

성탄발표회를 위해 한 달 가까이 교회에서 지낸 주일학교 시절을 회상하면 지금도 즐겁다. 어린 시절에는 딱히 재미있는 놀이가 없었다. 그래서 교회생활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고, 1년 중 가장 행복한 날이 성탄절이었다. 그리고 교회에서 주는 성탄선물은 아껴가며 1년 내내 사용했던 기억이 새록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성탄발표 준비를 위해 친구와 손잡고 함께 오르던 교회 언덕길은 사뭇 달랐다. 평소와 달리 그날의 교회 분위기는 어둡고 조용하기만 했다. 교회에 들어섰을 때 한 선생님께서 침울한 얼굴로 “오늘 발표회는 못하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궁금한 것이 많은 시기라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전도사님께서 간밤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차가운 겨울 저녁 성탄발표회 연습을 위해 오는 우리를 위해 어김없이 연탄난로를 지펴주시던, 바로 어제도 뵈었던, 언제나 밝은 웃음이 얼굴에 가득했던 전도사님께서 소천하셨다는 것이 아닌가.

교회 바로 옆에 방 한 칸을 사택으로 쓰고 계셨는데 연탄가스로 돌아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60을 넘긴 연세에 혼자 지내셨음에도 굉장히 인자한 분이셨는데 홀로 돌아가셨다니 참 슬펐다. 어린 나이에 겁도 없이 전도사님께서 돌아가셨다는 그 방을 열어보았다. 하얀 천에 덮인 전도사님의 그 마지막 모습은 지금도 성탄절이 되면 생생히 기억난다.

그렇게 우리는 발길을 돌려 집으로 왔고 다음날 아침 성탄축하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갔다. 교회 강단에는 성탄선물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그 선물들은 다름 아닌 돌아가신 전도사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일이 포장을 하셨던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받은 선물을 열어 보았다. 학용품이 종류별로 담겨 있는 종합선물이었다. 어린나이지만 그때의 학용품은 꽤나 오랫동안 아끼며 사용한 기억이 난다.

그렇게 35년이 훌쩍 지났지만, 매년 성탄절이 되면 그때의 일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 기억 속에는 단지 선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도 돌아가신 이금옥 전도사님과 같은 전도사가 될 수 있을까” 했던 잠시 꿨던 나의 꿈도 함께 말이다.

■ 생애 최고의 성탄선물, 예수 그리스도

▲ 배안호 선교사
(파라과이)

파라과이는 35~38도의 무더위가 계속이다. 한 여름에 성탄의 계절을 맞고 있다. 성탄절이 올 때면 나는 언제나 감격스럽다. 나의 생에 최고의 성탄선물을 받았고, 그 성탄선물로 인해 지금의 내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지 않던 고등학교 시절의 성탄절은 불만이었다. 내가 받은 성탄카드에 온통 ‘즐거운 성탄’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표현이 싫어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왜 예수의 생일만 세계적으로 야단스럽게 축하해야 하는가? 서구종교에 대한 맹종일 뿐이라는 나름의 논리로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불만을 품고 지내던 어느 성탄절 즈음, 서울 연희동 외국인학교 안에 있었던 미션 컴파운드의 빤짝이는 성탄 트리 앞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그때 놀라운 기쁨이 내게 밀려왔다. 그렇게 성탄의 계절에 극적으로 예수를 만났고, 이제는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전하는 선교사로 쓰임 받고 있는 모습은 정말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로마가톨릭의 대륙, 남미의 심장 파라과이에서 성탄절을 맞는다. ‘REGALO’(선물)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파라과이 사람들. 그래서 나는 갈보리교회 가족에게 최고의 선물을 전할 것이다. 진정한 메리 크리스마스가 되도록 말이다.

기독신문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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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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