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안 대사교회 정의행 목사가 열악한 목회 현장 속에서 쓴 시집과 책을 소개하고 있다.

대사교회 정의행 목사, 저술 활동서 뜻밖의 행복
정행출판사 설립 ‘한국교회 공헌’ 비전 만들어가

해제는 묘한 지역이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섬인 듯, 무안에서부터 도로가 쭉 연결되어 육지인 듯 혼돈을 일으킨다. 어쨌든 내륙에서 접근이 어려운 오지나 다름없어 거주하는 인구도 많지 않다. 대사교회 정의행 목사는 그 동네에서 14년째 목회하고 있다.

사례비는 열악하고, 예배당 천장에서 물이 샌다. 몇 안 되는 교우들 중에서 연로한 이들은 점점 요양시설로 거처를 옮기고, 다문화가족과 장애인들까지 빼고 나면 믿고 동역할 일꾼조차 찾기 힘들다. 이곳에 부임해 가족을 병으로 잃기도 했다.

▲ 정의행 목사는 광신대 김용준 교수(왼쪽)와 동역하며 신학 책을 집필했다.

모자라는 생활비와 아이들 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낡은 예배당을 보수하기 위해 직접 양파와 마늘농사를 지어보고, 공사판이나 공장일에 뛰어든 적도 있다. 덕택에 목수기술 등 여러 기능들을 익히기는 했지만 목회자로서 자긍심에는 적잖은 상처를 입었을 터이다.

“딱 10년만 채우자고 몇 번이고 마음에 새기며 버텼지요. 어느 날 문득 사택에서 문을 열고 나서는데 ‘주님,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합니까?’라는 한탄이 입에서 새어나오는 겁니다. 길가에 주저앉아 한참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중얼 한 일이 있습니다.”

정 목사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그 순간부터이다. 따로 배우거나 훈련한 적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가난한 살림에 쫒기며 살다보니 여유 있게 글을 쓰는 일에 관심을 갖지 못하다가, 교회에 다니면서부터 조금씩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숨은 재능이 어느 순간 폭발하듯 터져 나온 것이다.

▲ 함께 대사교회를 일궈가는 성도들은 정 목사의 힘이다.

2014년 1월에 첫 시집 <여행>을 비롯해 <길> <계절의 향유> <해제섬과 창세기> 등 네 권의 시집을 잇달아냈다. 시를 쓰는 일은 사방이 꽉 막힌 듯 답답하기만 했던 정 목사에게 탈출구와도 같은 길이었다. 동시에 글쓰기 자체가 하나의 사역처럼 자리 잡았다.

한편으로 자신의 목회지 주변의 풍광과 온갖 이야깃거리들을 글로 담는가하면, 또 한 편으로 복음사역자로서 자랑스럽게 간직해 온 신학사상을 책으로 펴내는 일에도 착수했다. 개혁주의 신학의 시선으로 방언현상을 분석한 저서 <방언>이라든지, 신학교 동기인 광신대 김용준 교수의 저서 <아나타시우스의 성령론> <삼위일체 하나님> 등이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돈 안 되고 힘이 몽땅 드는 일만 골라서 한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정 목사에게 이 사역은 커다란 기쁨이자 보람이다. 시를 쓰고 책을 내면서 방송에도 몇 차례 출연했다. 거기서 소개한 자작시 ‘내 사랑 대사리’는 꽤 많은 이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무엇보다도 목회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을 회복한 것이 정 목사 입장에서는 가장 큰 소득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 해제의 산하와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점점 이해하고 사랑하는 깊이가 더해졌다. 글쓰기에는 언제부터인가 그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고백, 그리고 행복으로의 초대의 메시지가 가득하다.

“어느 날 교회 임직식을 마치고 교우들이 기념으로 양복이나 한 벌 해 입으시라며 봉투를 마련해왔어요. 그분들 어려운 사정을 제가 다 아는데 어떻게 그냥 거둘 수 있겠어요? 마음으로 감사히 받은 셈치고 돌려드렸죠. 대신에 이분들께 더 좋은 목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죠.”

▲ 정의행 목사의 열정과 꿈의 소산인 시집과 신학서적들. 앞으로 정행출판사를 통해서 그 꿈의 날개가 더욱 활짝 펼쳐질 것이다.

물리적 환경이 나아진 건 아직 아무 것도 없지만 그의 목회에는 점점 힘이 더해진다. 출판사역도 본인의 이름을 따 ‘정행출판사’라는 브랜드를 만들며 더욱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정행출판사의 첫 작품이었고, 앞으로 <평신도를 위한 조직신학> <에베소서> <오순절에 대한 오해> 등의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책 한 권을 낼 때마다 ‘내가 한국교회에 일정부분 공헌하고 있구나’하는 희열을 느낀다는 정 목사는 선배 개혁주의자들에게서 받았던 깊은 감명을 후배들에게 잘 전해주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다. 그래서 ‘교부연구회’ 같은 모임을 결성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해제라는 동네는 그를 옥죄는 공간이 아니다. 환경을 초월해 더 높은 이상을 꿈꾸고 실천하는 비전의 공간이다. 정 목사의 사명은 그 가운데서 풍요로운 꽃을 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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