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교회 정의행 목사, 저술 활동서 뜻밖의 행복
정행출판사 설립 ‘한국교회 공헌’ 비전 만들어가
해제는 묘한 지역이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섬인 듯, 무안에서부터 도로가 쭉 연결되어 육지인 듯 혼돈을 일으킨다. 어쨌든 내륙에서 접근이 어려운 오지나 다름없어 거주하는 인구도 많지 않다. 대사교회 정의행 목사는 그 동네에서 14년째 목회하고 있다.
사례비는 열악하고, 예배당 천장에서 물이 샌다. 몇 안 되는 교우들 중에서 연로한 이들은 점점 요양시설로 거처를 옮기고, 다문화가족과 장애인들까지 빼고 나면 믿고 동역할 일꾼조차 찾기 힘들다. 이곳에 부임해 가족을 병으로 잃기도 했다.
모자라는 생활비와 아이들 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낡은 예배당을 보수하기 위해 직접 양파와 마늘농사를 지어보고, 공사판이나 공장일에 뛰어든 적도 있다. 덕택에 목수기술 등 여러 기능들을 익히기는 했지만 목회자로서 자긍심에는 적잖은 상처를 입었을 터이다.
“딱 10년만 채우자고 몇 번이고 마음에 새기며 버텼지요. 어느 날 문득 사택에서 문을 열고 나서는데 ‘주님,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합니까?’라는 한탄이 입에서 새어나오는 겁니다. 길가에 주저앉아 한참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중얼 한 일이 있습니다.”
정 목사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그 순간부터이다. 따로 배우거나 훈련한 적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가난한 살림에 쫒기며 살다보니 여유 있게 글을 쓰는 일에 관심을 갖지 못하다가, 교회에 다니면서부터 조금씩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숨은 재능이 어느 순간 폭발하듯 터져 나온 것이다.
2014년 1월에 첫 시집 <여행>을 비롯해 <길> <계절의 향유> <해제섬과 창세기> 등 네 권의 시집을 잇달아냈다. 시를 쓰는 일은 사방이 꽉 막힌 듯 답답하기만 했던 정 목사에게 탈출구와도 같은 길이었다. 동시에 글쓰기 자체가 하나의 사역처럼 자리 잡았다.
한편으로 자신의 목회지 주변의 풍광과 온갖 이야깃거리들을 글로 담는가하면, 또 한 편으로 복음사역자로서 자랑스럽게 간직해 온 신학사상을 책으로 펴내는 일에도 착수했다. 개혁주의 신학의 시선으로 방언현상을 분석한 저서 <방언>이라든지, 신학교 동기인 광신대 김용준 교수의 저서 <아나타시우스의 성령론> <삼위일체 하나님> 등이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돈 안 되고 힘이 몽땅 드는 일만 골라서 한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정 목사에게 이 사역은 커다란 기쁨이자 보람이다. 시를 쓰고 책을 내면서 방송에도 몇 차례 출연했다. 거기서 소개한 자작시 ‘내 사랑 대사리’는 꽤 많은 이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무엇보다도 목회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을 회복한 것이 정 목사 입장에서는 가장 큰 소득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 해제의 산하와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점점 이해하고 사랑하는 깊이가 더해졌다. 글쓰기에는 언제부터인가 그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고백, 그리고 행복으로의 초대의 메시지가 가득하다.
“어느 날 교회 임직식을 마치고 교우들이 기념으로 양복이나 한 벌 해 입으시라며 봉투를 마련해왔어요. 그분들 어려운 사정을 제가 다 아는데 어떻게 그냥 거둘 수 있겠어요? 마음으로 감사히 받은 셈치고 돌려드렸죠. 대신에 이분들께 더 좋은 목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죠.”
물리적 환경이 나아진 건 아직 아무 것도 없지만 그의 목회에는 점점 힘이 더해진다. 출판사역도 본인의 이름을 따 ‘정행출판사’라는 브랜드를 만들며 더욱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정행출판사의 첫 작품이었고, 앞으로 <평신도를 위한 조직신학> <에베소서> <오순절에 대한 오해> 등의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책 한 권을 낼 때마다 ‘내가 한국교회에 일정부분 공헌하고 있구나’하는 희열을 느낀다는 정 목사는 선배 개혁주의자들에게서 받았던 깊은 감명을 후배들에게 잘 전해주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다. 그래서 ‘교부연구회’ 같은 모임을 결성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해제라는 동네는 그를 옥죄는 공간이 아니다. 환경을 초월해 더 높은 이상을 꿈꾸고 실천하는 비전의 공간이다. 정 목사의 사명은 그 가운데서 풍요로운 꽃을 피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