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교단 ‘동일한 24시간’ 지지

‘시간 해석보다 창조주 하나님 능력에 집중’ 입장도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5)

성경에는 구체적 서술이 나오지 않는 구절들이 있다.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다. 해석은 다양할 수 있지만 어떤 해석을 취하느냐에 따라 성경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중요하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엿새 동안에 창조하셨다고 말씀했다. 엿새를 이루는 각각의 한 날을 어느 정도 시간으로 볼 것이냐를 가지고 논란하는 것은 그 이후의 성경해석에 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기독교역사에서 창세기의 ‘날’(욤)을 해석하는 견해는 크게 3가지이다. 첫째 길이를 알 수 없는 장구한 시대라고 보았다. 요세푸스와 오리겐이 그런 견해였다. 둘째 현재의 길이와 동일한 24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칼빈과 루터가 그렇다. 셋째 전체 6일 중 전 3일과 후 3일의 기간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성경을 보면 제4일에 비로소 태양이 생겼다. 따라서 제 4일 이후는 현재와 같은 24시간이지만 그 이전은 시대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어거스틴과 바빙크가 그런 입장이다.

여기에 하나의 입장이 더 있다. ‘날’의 기간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창세기의 기록은 지구가 몇 시간 동안에 창조되었으며 사람이 어떤 재료로 탄생했는지 등을 과학적으로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창조기록의 문학적 배열이라든지 사람 탄생의 묘사 등을 볼 때 창세기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라는 사실과 피조물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준다고 받아들인다.

위 네 가지 견해는 보수적 신학관을 가진 교회들에서 다 용인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장합동교단을 비롯한 다수의 교단들은 사실 창세기 1장은 24시간이라는 ‘일자설(日字說)’을 선호하고 있다. 칼빈은 “하나님이 왜 하필, 6000년도 채 되지 않은 과거에 만물을 창조하셨는지 의구심을 가지고 조롱하는 자들이 있지만, 그것은 우리의 한계 밖에 있는 일이다. 특별히 하나님은 만물을 엿새 동안 창조하셨다”고 말했다.

박형룡 박사는 “창세기의 저자는 어떤 은밀한 양식으로 지질학적 기간들을 암시한다는 것보다도 여섯 개의 문자적 일들에 관설한다고 추상하는 것이 훨씬 더 논리적이다”라고 저술했다. 박윤선 박사는 ‘날’에 대한 다양한 역사적 입장들을 소개한 뒤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24시간과 같은 짧은 기간에도 큰 일을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보수적 교단들이 ‘일자설’을 지지하는 이유는 성경해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또 출애굽기 20장 8~11절에 나오는 안식일의 하루와 창조의 6일의 하루씩을 다르게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창조의 6일과 안식일 명령을 내릴 때의 6일을 구별하여 말씀하지 않았다.

제4일 이전에는 태양이 없었기 때문에 온전한 하루가 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 태양이 없더라도 하루는 지나갈 수 있다는 주장으로 반박하고 있다. 창조의 첫날을 설명한 창세기 1장 5절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고 표현하고 있다. 분명 태양은 아직 창조되지 않았는데 저녁과 아침이 있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밤낮 구별은 태양이 아니라 지구의 자전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창세기 1장 3절에 빛이 있었는데 이 빛이 저녁과 아침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고 본다. 태양만을 빛의 근원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고 과학적으로 태양빛은 빛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제4일 이전에도 하나님이 창 1장 3절에서 창조한 빛의 비추심과 지구의 자전으로 밤 낮의 순환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6일간의 전체 창조 기사에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문장이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으로 보아서 6일간의 기간은 모두 같고 그것은 지구가 한번 자전하는 시간, 즉 24시간이라는 결론이 타당하다고 설명한다. 물론 일자설을 지지하지 않는 학자들 나름의 논리와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타당한 논리와 성경을 바탕으로 한 근거들을 가지고 이야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에 대한 입장은 신앙의 문제다. 전능하신 초월자 하나님과 그분의 행동을 인간의 경험과 과학으로 완전히 탐구할 수 없다. 창조에 대한 신앙관을 정립하되 다른 신앙적 견해를 가진 이들을 공격할 필요는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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