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훈 목사의 초량이야기]

장기려(張起呂)는 피난민이다. 그리고 장기려는 의사다. 우리나라 최고 입담이라고 할 수 있는 유시민은 방송에서 장기려를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렀다. 장기려는 크리스천이요 장로다. 그리고 장기려에게 가장 즐겨 붙여진 별명이 ‘장바보’, 바보 장기려였다.

어렸을 적 담벼락이 생각난다. 스마트폰에 빠져있는 지금에 비하면 원시시대에 가까운 그 시절, 아이들에겐 담벼락이 스트레스를 푸는 곳이요 예술혼을 표현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담벼락에 가장 많이 그려진 낙서는 ‘누구누구 바보’였다. 바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온 담벼락에 바보들 천지였다. 장기려가 그런 바보, ‘장바보’였다.

장기려의 고향은 평안북도 용천이다. 육이오 전쟁 때문에 아내와 자녀들과 생이별을 하게 되는데, 차남만 데리고 피난을 하였다. 생과일주스, 생크림, 생선에 쓰이는 ‘생’은 싱싱함과 신선미를 주지만 ‘생이별’의 ‘생’ 만큼은 참 아프고 쓰리다. 평생을 아프고 울어야 하는 쓰림이다. 피난 온 장기려는 초량에 머물며 얼마 동안 초량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이런 연유로 ‘초량 이바구 골목’ 언덕 끝자락에 장기려 기념관이 있다. 세상 사람들도 바보 장기려를 존경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공간이다.

장기려 기념관은 희생하며 섬기는 바보가 아니라 손익계산에 정확하고 빠른 계산기가 되어버린 우리 크리스천들을 치는 회초리다. 장기려 기념관의 이름은 ‘더 나눔’이다. 어쩌면 바보의 또 다른 이름이 ‘더 나눔’이 아닐까 싶다.

‘장바보’라고 불린다고 우습게보면 큰 실례다. 장기려는 1959년엔 간암 환자의 대량간절제술을 성공시킨 한국 ‘간(肝)외과학’의 실질적 창시자다. 또한 육이오 전, 북한에 있을 때 김일성도 아플 때 찾았었던 의사가 장기려다. 대단한 사람이다. 이런 장기려가 부산으로 내려와 시작한 것이 피난민을 돕기 위한 ‘천막병원’이었다. 폭탄 소리에 질겁하고 주린 배 움켜잡고 쫓기듯 피난 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아팠겠는가? 장기려는 명성을 택하지 않고 이들을 위한 천막병원을 시작했다. 지금의 부산 송도 바다 건너편에 우뚝 서있는 ‘복음병원(고신의료원)’의 전신이다.

▲ 부산 초량 이바구길에 있는 장기려기념관과 더나눔센터.

장기려는 ‘어떻게 하면 가난한 사람들도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였다. 그래서 우리나라 최초로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만들었는데, 현재 국민건강보험의 토대다. ‘청십자’를 통하여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의료 혜택을 입었다. 돈이 없는 사람의 치료비를 자기 월급에서 가불해 주었고, 돈이 정말로 없는 환자를 병원 뒷문으로 도망가도록 방치했다는 훈훈한(?) 일화도 있다. 은퇴 후에는 ‘청십자병원’을 설립하여서 봉사와 섬김을 계속했다.

‘이름 있고 환자 많았으니 일 돈 많이 벌었겠구나’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장기려는 죽을 때까지 집 한 채 없이 복음병원 옥탑방에서 살았다. 머리 둘 곳 없었던 십자가의 예수님처럼, 청십자의 장기려도 머리 둘 편안한 집하나 없었던 바보로 살았다. 이런 가난을 ‘청빈’이라고 부른다. 장기려가 섬김과 청빈으로 보여준 고품질의 믿음이 그 시대의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을 교회로 오게 했을 것이다. ‘전도는 삶으로 하고 혹시 필요하다면 입을 사용하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리고 장기려가 죽기 전에 제자들이 흉상을 만들어 세우려고 하였다. 장기려는 대노하면서 ‘내 흉상을 만드는 놈은 지옥에서 떨어지라’고 소리쳤단다. 제자들은 기겁하여 주저앉았고, 사진기사는 놀라서 밖으로 달아나버렸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오직 주 예수의 이름만 영광 받기를 원했던 바보의 진심이었다. 그런데 흉상은 만들어지고 말았다. 시세말로 ‘웃프’다.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면 안 되나. ‘거룩한 바보의 뜻을 그렇게 못 알아듣다니’하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들, 바보들 아니야?” 누가 바보인가, 어떤 바보가 되어야 하는가? 참 헛갈리는 세월을 만났다. 헛갈리면 ‘바로 살 수’ 없고 ‘바로 설 수’ 없다. 하지만 십자가의 예수, 청십자의 장기려를 생각하면 이내 답을 얻을 수 있다. 초량에 남아 있는 ‘장(張)바보’의 흔적에 내 꼴이 참 부끄러우면서도 깨달은 뭔가가 많은 고마운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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