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신문>이 만난 사람 '대통령의 구두'의 아지오(구두만드는풍경) 유석영 대표

▲ 아지오 구두를 만든 <구두만드는풍경>에는 청각장애인 직원들이 생산라인에서 일하고 있다. 유석영 대표는 시각장애인이다. 유석영 대표의 신앙과 청각장애인들의 성실이 어우러져 튼튼하고 편안한 신발을 만들고 있다.
 

‘대통령이 신은 구두’ 호응, 폐업 5년만에 재기 … “격려와 사랑, 좋은 구두로 보답”

살다보면 참 별일이 다 있다. 끝장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끝장이 났는데, 마치 부활의 기적처럼 다시, 그것도 힘차게 일어서기도 한다.

제화회사인 <구두만드는풍경> 유석영 대표의 이야기다. 구두만드는풍경은 속칭 ‘대통령구두’를 만든 회사로 유명하다.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5월, 광주 5.18 묘역을 참배했다. 무릎꿇은 대통령의 뒷모습 사진이 신문에 실렸고 바닥이 갈라진 구두가 주목받았다.

“대통령이 참 검소하게도 오래도록 구두를 신었네”, “도대체 어떤 구두인데 대통령이 그렇게 애지중지했을까.”

사람들은 대통령이 그 구두를 4년째 신었으며, 구두를 만든 회사가 청각장애인들을 직원으로 두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구두회사가 이미 3년 전에 폐업했다는 것도 알아냈다. 구두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구두회사는 망한 지 5년만인 2018년 2월 다시 문을 열었다.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구두만드는풍경에서 유석영 대표를 만났다. 그는 훤칠한 키에 깔끔한 외모를 지녔고 또렷하고 힘있는 목소리를 가졌다. 유 대표는 “대통령이 우리 회사 구두를 신었다는 유명세를 얻게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사무실로 찾아와서 회사를 다시 일으키자고 제안했지만 많이 망설였다”고 말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장애인들에게 또한번 상처를 주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끊임없는 격려가 유 대표의 근심을 밀어냈다. 펀드를 조성해서 소액 투자자를 모았고 사회적 협동조합을 설립해서 36명의 투자를 받아 5000여 만원으로 회사 간판을 달았다. 대통령 구두를 만들었다는 인지도와 장애인 회사라는 점을 살려서 공공기관의 판로를 뚫어 가면서 시장에서 입지를 세워가고 있다.

대통령이 구두를 신었다는 뉴스 때문에 대통령과 어떤 연관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선입견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의 만남은 실로 우연이었다. 유석영 대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고백했다.

▲ <구두만드는풍경>이 만든 구두들.

유석영 대표는 가난한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청소년기에 실명을 하고 적잖이 방황했다. 어느날 동네 아저씨가 “너는 목소리가 훌륭하니 아나운서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게 되면서 자신을 돌아봤고, 차츰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20대 초반부터 장애인 사역에 뛰어들었고, 자원봉사단체를 이끌면서 시각장애인캠프를 기획했다.

유 대표는 도전정신이 있는 사람이었다. 한 방송사를 과감하게 찾아가서 홍보를 요청했는데 뜻밖에도 스튜디오에 직접 나와서 캠프를 홍보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방송을 몰라서 사전 원고를 준비하지 않고 출연했는데도 훌륭하게 해냈고 이를 계기로 그는 방송사의 리포터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친구가 다니는 교회의 장애인재활직업시설 설립사역을 도와주면서 시설의 원장으로서 새출발을 했다. 이후 파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장이 되어 장애인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들을 진행했다. 다른 장애인들은 참여도가 높았는데 청각장애인들은 이상하게도 호응이 낮았다. 이유를 알아보니 청각장애인들은 신체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소통이 되지 않아서 자주 직장을 옮겨다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직이 잦기 때문에 복지관 프로그램에 꾸준히 나올 수 없고, 일부는 오가는 교통비가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유 대표는 청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전에 견학한 구두회사에 청각장애인들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 내 복지관 산하에 구두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구두만드는풍경이었고 거기서 만든 유일한 브랜드가 ‘아지오’(AZIO, 이탈리아 말로 ‘편안한’이라는 뜻)였다. 유통구조나 유행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시작한 사업은 3년 9개월만에 접어야 했다. 짧은 회사 운영 기간동안 회사를 살려보려고 여러 곳에서 좌판을 벌렸고 지인을 통해서 국회에 가서 구두를 판매했다. 그때 국회의원이었던 문재인 대통령도 구두를 사갔다.

파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장 시절 유 대표는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기독교인 직원들과 함께 기도회를 가졌다. 장애인들과 소외된 이들을 잘 도울 수 있도록 지혜를 간구했다. 어느날 한 직원이 기도모임이 발전해서 교회가 세워졌으면 좋겠다는 기도제목을 내놓았다. 직원들은 구두만드는풍경이 잘 되어서 장애인들이 돈을 벌고 헌금해서 교회를 함께 세우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구두만드는풍경이 망하자 유 대표는 복지관장직을 사임했다. 누가 그만두라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장애인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자책감을 가졌다. 구두만드는풍경을 재창업하기 전까지 그는 복지관을 떠나서 다른 장애인 기관에 몸을 담았다.

유석영 대표는 “구두회사의 첫 번째 실패는 나를 겸손하게 했다”면서 “사업의 성공과 더불어 직원들이 예수님을 믿는 일과 농아인교회를 세우는 일이 나의 기도제목”이라고 밝혔다.

구두만드는풍경이 만들어내는 구두 브랜드는 ‘아지오’다. 친근하고 이국적인 이름 때문에 많은 이들이 회사 이름보다 상호를 더 많이 기억하고 있다.

아지오 구두는 맞춤구두다. 성남의 매장으로 직접 찾아가거나 출장을 요청해서 직접 자신의 발 치수를 재면 2주 후에 신발을 받을 수 있다. 매장에 가서 발을 측정하면 출장비 3만원을 주지 않아도 된다. 다른 신체기관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발도 오른발과 왼발이 조금씩 다르다. 볼의 크기나 발등의 높이가 차이가 난다. 맞춤구두를 신으면 편안함을 만끽할 수 있다. 회사에서 기성화도 파는데 맞춤구두나 가격이 똑같이 한 켤레에 20만원 또는 25만원이다.

신앙으로 시작한 회사이기에 좋은 재료를 쓰는데다가 청각장애인들의 성실함이 덧입혀져 튼튼하다. 그 튼튼함은 이미 대통령이 증명했다. 생산직에서 14명이 일하고 있다. 공장장과 수화통역사 외에 모두 청각장애인이고 70세가 넘은 지체장애인이 1명 있다. 연장으로 가죽을 내리치는 소리가 간간히 들릴 뿐 여느 회사와 달리 조용한 공장 풍경이다. 작업을 총지휘하는 이는 40년 경력을 가진 구두장인 전경수 공장장이다. 전경수 공장장의 지휘 아래 직원들은 구두 만드는데 필요한 40여개의 공정을 분업해서 차근히 진행하고 있다. 공장장이 설명하면 수화를 전문으로 하는 직원이 이를 전달해 준다.

전경수 공장장은 “장애인들이 구두를 잘 만들 수 있을까 염려하는 이들이 있지만 일반인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다”면서 “청각장애인 가운데는 손재주가 뛰어나고 집중력이 높은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회사에 장애인이 10명이 넘으면 표준사업장으로 분류되어 수의계약을 따낼 수 있고 공공기관과 기업체으로 판로를 뚫기가 쉬워진다. 그러나 안정적인 수익을 내어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개선시켜 주기 위해서는 시장이 넓어져야 한다.

다행히 교회들이 구두만드는풍경의 구두를 구입해 주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구두만드는풍경 유석영 대표는 하남시 초동교회의 안수집사이며 그의 가족은 신앙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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