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훈 목사의 초량이야기]

지금의 초량교회 예배당은 1963년에 건축된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이전 예배당은 지금의 예배당을 건축하면서 허물어졌다. 참 아깝고 아쉬운 철거였다. 일제에 항거하며 기도하고 하나님을 예배했던 건물이었는데, 6·25 전쟁에서 마지막 낙동강 전선을 남겨두었을 때 전국에서 피난 온 목사와 장로들이 눈물로 온 마룻바닥을 적시면서 기도하였던 건물이었는데 말이다.

역사의식보다는 지지리도 힘들었던 가난의 모습을 빨리 벗겨내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시절이었기에, 뾰족한 말로 공박할 맘은 없지만 그래도 못내 아쉽다. 몸에서 떨어져 나온 살점처럼, 당시의 붉은 벽돌 다섯 장이 교회 역사관에 보관되어 있어서 맘을 짠하게 한다. ‘오래된 집을 부수는 것은 역사를 부수는 것’이라는 금언(金言)은 절대로 빈 말이 아닌 것 같다.

이제 자기반성과 역사적 후회를 그만하고 예배당 건축 이야기를 해보자. 두 가지 감격스러운 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는 그 옛날 외국 선교사들의 마음과 자세다. 지금 예배당은 초량교회 역사로 보면 1892년 설립 이래 세 번째 건물이다. 비바람 속에서도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듯 바로 여기서 초량교회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런데 초량교회 설립자는 미국북장로교 선교사인 윌리엄 베어드인데, 예배당 부지(敷地)는 호주선교부의 소유였다. 호주선교부는 북장로교 선교사가 교회의 예배당 건축을 위해 자신들의 땅을 요청하니 기꺼이 허락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성도들에게 헌신과 신앙을 가르치기 위해서 팔았다. 하지만 당시 7000원짜리 땅을 그 보다 20년 전에 구입했던 가격인 336원이라는 원가로 내주었던 것이다. 생각할 때마다 귀하다. 선교사들은 조선 땅을 두고 서로 경주하는 선의의 경쟁자였지만, 하나님나라를 위한 거룩한 동업자이기도 했다. 그 때 그 분들의 자세는 오늘날 바가지 속의 팥알처럼 따로 노는 한국교회가 새겨야할 귀감이지 싶다.

▲ 초량교회가 일제강점기에 두 번째 예배당을 지을 당시 건축헌금 장부와, 백산 안희제 선생이 2000원을 헌금한 기록.

1922년에는 70평의 두 번째 예배당을 완공하여 헌당했다. 그때도 건물을 지으려면 지금처럼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였고 가난과 핍절이 일상인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매켄지(매견시) 선교사가 건축위원장을 맡고, 담임 정덕생 목사를 비롯해서 장로 영수 집사들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헌신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건축헌금을 하였다. 그런데 깜짝 놀랄 사실이 있으니,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들도 건축헌금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것이 백산상회 안희제 선생의 헌금이다.

백산상회는 백산 안희제 선생이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세운 회사다. 일제가 눈엣 가시처럼 여겼던 민족의 자랑이고 자긍의 대명사인 기업이다. 훗날 백산상회는 해체되었지만 부산 중구 동광동의 그 자리에 ‘백산기념관’이 세워져 나라사랑 정신을 가르치고 있다. 초량에서 차를 타면 10분 거리다.

당시 초량교회 예배당 건축에 1만 4000원이 들어갔는데, 백산상회 안희제 회장이 무려 2000원을 헌금하였다. 그리고 백산상회의 2인자요 자금부장격인 윤현태도 2000원을 헌금하였다. 윤현태는 초량교회 안수집사였다. 그의 동생 윤현진은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차장으로 봉직하였다.

참 놀랍다. 백산 안희제 선생은 대종교를 신봉하였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기독교 초량교회 예배당을 건축하는데 거액을 헌금한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팔이 안으로 굽는 해석인지 몰라도, 교회가 그 암울했던 시대의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었다. 성도들의 반듯하고 거룩한 삶은 민중들에게 충격이었고 삶의 모범이 되었다. 나라 사랑하는 애국자의 상당수가 크리스천이었다. 그리고 교육으로 아이들을 키워주고 의료로 병자를 고쳐주는 곳이 교회였다. 안희제의 눈에 이런 희망이 보였을 것이다.

불신자들과 백산 안희제 선생의 건축헌금에서 작금의 조국 교회가 살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역사를 보시라.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향해서 비난의 돌만 던졌던 것이 아니라, 귀한 돈도 던질 줄 알았다. 어쩌면 그 돈은 교회를 향한 칭찬과 응원이었다. 안희제 선생의 건축헌금은 오늘 우리들의 부끄러움을 보여주는 동시에 내일의 답을 보여준다. 안희제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조국의 교회들에게 무엇을 던질지 궁금하다. 돌일까, 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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