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 경계가 애매해진 ‘세습과 계승’ … 긍정적 목회 대물림도 부정적 세습 굴레에 묶여

‘혈통상 목회직 세습’ 아닌 목회 본질인 ‘섬김’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교회법 강화해가야

명성교회 김삼환 김하나 목사의 세습으로 한국교회가 지탄을 받고 있다. 명성교회 세습 문제가 논란인 상황에서도 또 다른 대형교회인 연세중앙교회는 윤석전 목사의 아들을 후임으로 청빙했다. 6년 전에도 대형 교회의 세습 문제로 한국 교회와 사회에 논쟁이 일어났다.

당시 보수적인 교회연합단체들은 대형교회의 부자세습을 “직계자손이라 할지라도 청빙된 교회의 후임으로 가는 일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본인의 소명”이라며 옹호했다.

김영한 원장(기독교학술원)은 “지금 교회의 세습 문제는 한국교회를 내부적으로 갈등과 분열에 빠뜨리고 국민적 지탄을 받게 한다”고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비속 및 존속)의 뒤를 이은 목회는 모두 세습의 부정적인 굴레에 묶이고 있다.

▲ 교회의 권력과 재력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목회세습이 교회와 사회에서 큰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대형 교회들은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연이어 세습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명의식을 갖고 농어촌과 오지, 도시의 미자립 교회에서 목회 승계를 한 젊은 목회자들이 세습의 굴레에 묶여 고개를 숙이고 있다. 한국교회와 총회가 목회 세습과 계승을 구별해서 논의할 때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기독교학술원이 16일 개최한 포럼에서 이상원 이승구 이일호 교수 등이 ‘목회 세습과 바른 승계’라는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부끄러움은 작은 교회의 몫
전북 순창에서 사역하는 ㅎ목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촌 교회 담임으로 부임했다. 그는 평생 목회에 헌신한 아버지를 존경하며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총신신대원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10년 동안 부교역자로 사역했다. 아버지가 은퇴했을 때, 노인 7명이 출석하는 교회는 후임을 구할 수 없었다. ㅎ목사는 농촌목회에 관심도 비전도 없었지만, “아버지가 평생 헌신한 교회와 성도를 두고 볼 수 없어서 부임했다. 그래도 목회세습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서초동에서 사역하는 ㅂ목사 역시 아버지가 목회하던 교회에 부임했다. 그의 아버지는 평생 지방을 다니며 교회들을 개척했고, 상가 교회에서 은퇴를 했다. ㅂ목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담임을 맡는다는 부담이 컸지만, 그를 청빙하기로 결정한 40여 명 성도들의 뜻을 따랐다. 벌써 5년이 흘렀지만 ㅂ목사는 “어쨌든 ‘목회세습’을 한 것이다. 사실 아직도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ㅎ목사와 ㅂ목사는 40대 중반이다. 젊은 나이에 다른 가능성을 포기하고 미자립 교회에서 힘들게 사역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회를 한다는 ‘부자세습’의 굴레에 매여 있다. 대형 교회처럼 ‘막대한 권력과 재정의 대물림’이 아님에도, 스스로를 ‘세습’으로 규정하고 부끄러워하고 있다.

앞서 대형 교회 세습 논란이 일었던 6년 전, 신학자들은 “작은 교회나 시골 교회에서 아버지의 목회를 아들이 세습한다고 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 교회를 담임 목사 자녀가 세습한다면, 모두 칭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교회세습 논란이 터진 오늘, 이 말은 오류가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세습과 ‘계승’ 분명히 구별시켜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는 2013년 제98회 총회에서 ‘담임목사 직계자녀에게 목회세습을 금지’하는 결의를 했다. 그러나 당시 총회임원회(총회장:안명환 목사)는 이 결의를 총회회의록에 넣지 않았다. 결국 99회 총회(당시 총회장:백남선 목사)에서 목회세습 금지결의를 철회하고 엉뚱하게 ‘세습이란 용어를 사용금지한다’고 결의했다. 총회가 세습을 법적으로 용인하면서 오히려 긍정적인 목회 계승마저 세습의 범주로 비판받는 상황이다.

오랫동안 낙도 오지 선교에 매진한 박원희 목사는 “농어촌과 낙도의 교회들 중에도 목회 대물림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물림한 목회자들을 보는 지역 목회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 때문에 세습과 계승을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회의 권력과 재력을 세습하는 것은 금지시키고, 지역과 선교를 위한 목회 계승은 노회의 허락을 거치는 등 일정한 공식 절차를 통해 권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목회계승의 사례는 ㅎ목사가 부임한 후 순창의 교회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교회는 젊은 목회자가 부임하면서 동네 노인들의 돌봄 사역을 활발히 펼치고, 지역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의 판로까지 개척하고 있다. ㅎ목사와 교회는 지역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됐다.

현재 한국의 농어촌 교회 상황은 ㅎ목사 없는 순창 교회와 비슷하다. 사명을 가진 젊은 목회자가 오지 않는 한 시골 교회는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총회에서 ㅎ목사처럼 시골 미자립 교회를 위한 목회 대물림을 ‘계승’으로 지칭하고 권장한다면, 농어촌 목회와 선교에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물론 목회계승을 권장하기 위해서 권력과 재력을 대물림하는 목회세습은 금지시키는 법적인 구별이 필요하다.

단순히 세습금지 차원을 넘어 소명을 갖고 사역을 승계하는 목회자를 위해, 농어촌 목회와 선교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총회가 이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성경과 본질에 입각해 풀어가야
목회 세습과 계승의 문제에 대해 최근 이상원 교수(총신신대원장)가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 이상원 교수는 11월 16일 열린 기독교학술원 영성포럼에서 ‘성경과 기독교윤리 입장에서 목회 세습과 계승’ 문제를 다루었다.

이상원 교수는 목회세습을 ‘목회직의 혈통상 계승’으로 규정하고, 현재 세습 논란의 핵심을 ‘교회재정’으로 지적했다. 이 교수는 “사도시대에 바울과 사역자들은 신중한 태도로 교회재정 운영에 대처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교회재정과 운영에 참여하지 않고 집사를 세워 관리와 운영을 위임했다”며, 초대교회처럼 담임목사가 재정권에 관여하지 않는 방안을 제시했다.

목회 세습과 계승의 문제에 대해 이상원 교수는 일단 ‘교회의 돌봄과 말씀 증거의 직무(목회)를 수행하는 데 혈통은 판단의 기준이 아니었다’고 원칙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성경에 없는 혈통계승 금지를 법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역차별 문제를 포함해 논란을 불러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원 교수는 부정적인 혈통상의 계승 문제를 막기 위해서 “권력행사가 아닌 목회의 본질인 섬김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교회법을 강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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