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식 목사(달제교회)

▲ 김원식 목사(달제교회)

도덕적 실패는 항상 고통과 대가를 수반한다. 특별히 교회지도자들의 타락은 그 개인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은 물론 그의 가족, 주님의 교회, 그리고 하나님 영광을 가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더 나아가 믿지 않는 사람들 모두에게 여러모로 상처를 준다. 그래서 슬프고 아프다.

이 시대의 교회를 향해 다음과 같은 충격적 물음에 대하여 한국교회는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과거 교회는 세상을 향해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해 왔다. 그러나 금세기 말에는 거꾸로 세상이 교회를 향하여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참된 복음을 지닌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인가?”

교회는 공공성(公共性)을 갖는다. 세상은 기독교 교리에는 별반 관심이 없다. 그들은 교회의 행위에 관심을 갖는다. 불신자는 교리가 아니라 성도들의 행위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 점에서 교회와 신자는 언행에 신중해야 한다. 교회라면 믿음이 가고, 목사나 장로라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존경이 가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 입으로만 잘 믿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얕잡아 보이는 이 시대에 교회 권위가 회복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시대는 양(羊) 냄새나는 목자가 절실하다. 목자는 양을 치는 사람이다. 당연히 목자의 몸에서 양 냄새가 나게 되어 있다. 생선가게에서 비린내가 나듯 숨길 수 없다. 그런데 자기는 양을 치는 목자라고 하는데, 양 냄새가 나지 않고 염소를 안은 냄새가 나는 것이다. 양떼와 함께 울며 상처에 약을 발라주며 따뜻하게 안아줄 양 냄새나는 목자가 필요하다.

그러면 양 냄새가 나는 목자는 누구인가? 세례 요한과 같은 목자이다. 이 시대는 세례 요한과 같은 목자의 삶을 살아가는 목자를 요구한다. 세례 요한은 공동의 선(common goods)을 목적으로 했다. 그는 예수와 함께 동시대 사람으로 새로운 시대로 들어선 자다. 따라서 예수를 경쟁 구도 속에서 파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예수에 대항하여 자신의 입지를 확대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어두움 속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준비시켜 그들을 구원시킬 수 있는 예수에게로 인도하여 새 시대로 그들이 들어가게 하는 것을 사명으로(mission)으로 삼았다. 자신의 성취나 능력을 보여주기 보다는 자신의 역할을, 예수의 선구자로 예수의 길을 예비하며 평탄케 하는 것, 새 시대와 새 시대의 지도자 예수를 준비하는 데 주력하였다.

세례 요한은 또 자기희생(self-sacrifice)을 통하여 스스로 예수의 후원자가 되었다. 보통 지도자의 위치에 있게 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집단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후계자를 키우게 된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공동체의 발전과 유익을 위하여 계승자(예수)가 그에게 맡겨진 역할을 마음껏 수행하도록 자신의 위치를 기꺼이 내어 주었다. 나아가 자신의 추종자들에게도 계승자를 리더로 인정하게 만들었다.

세례 요한은 선지자의 소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악에 굴하지 아니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은 거룩한 강인함을 가졌다. 그는 잠깐 동안 이 세상에 살다갔지만 목자로서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그는 자신이 선포한 말씀대로 산 양 냄새가 나는 목자다. 그의 목을 친 헤롯도 그가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라 인정하였다(막 6:20).

이 시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다시 선택을 받으려면 세례요한과 같이 청빈과 희생과 섬김이 몸에 밴 목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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