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역사는 하나님이 활동하시는 시공간이다. 이 시공간 속에서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삶을 영위하고 있고, 그 삶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 우리는 믿음의 백성으로 감격한다. 이러한 역사 속에 살아가는 백성으로 우리가 늘 의식해야하고 또 떠날 수 없는 것이,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의식이다.

역사와 사회를 의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역사와 사회에 기여 공헌하는 것이다. 이 기여와 공헌이 없다면 우리는 다만 역사의 강에 얹혀 흘러갈 뿐이고, 기여와 공헌이 있을 때 우리는 역사의 파트너로서 하나님의 손에 사용되어 하나님의 섭리에 일조하게 된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책임은 결국 우리가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로 요약된다. 내 삶이, 내가 출석하고 시무하는 교회가, 그 소명과 사명을 다하고 소멸될 때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는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모든 만물의 기본 원칙은 생성과 소멸이다. 생물이 되었건 무생물이 되었건 모든 사물은 생성과 소멸의 원칙 속에서 필요와 용도에 의해 생성되었고, 그 용도가 다하면 폐기될 것이다. 그러나 그 흔적과 의미와 영향은 존속된다.

개인도 마찬가지고 교회도 마찬가지다. 광의의 교회는 주님의 구원이 이 땅에 존재하는 한 부침을 거듭해도 결국 살아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협의의 개교회는 용도의 한시에 의해 존재할 뿐이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 사용되다가 시대 속에 그 수명을 다하면 폐기되고 또 다른 교회를 세워 시대의 사명을 다함이 맞다. 교회가 설립되어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면, 어느 날 그 사명과 의무를 다 한 순간 폐 교회되어 수명을 다하는 것은 슬픈 것 같지만 교회 역사를 들여다 보면 지극히 정상이다. 교회가 그 이름으로 영원히 남을 것을 기대하거나 노력할 필요도 없고 그리 될 리도 없다. 사용될 때까지 아름답게 사용되고, 사명이 다 하면 아름답게 페이드 아웃(fade out)될 준비를 가지고, 역사 속의 전설이 되거나 소멸됨도 아름다운 것이다.

남는 것은 그 사명과 소명 그 수명을 다하였을 때, 개인과 마찬가지로 교회도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한 인생의 삶처럼, 그 한 교회는 역사 속에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 그 교회는 무엇으로 남아서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 역사 속에 빛이 바래도 어떤 다른 해석으로 인식되고 있는가. 역사의 한 조각 부분 혹은 한 사람 아니면 많은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될 영향을 줄 것인가가 아주 중요하다.

역사와 사회를 의식한다는 것은 결국 그 역사와 사회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고, 그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눈앞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끝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 손끝이 가리키시는 곳을 보아야 하고 그 방향을 보아야 한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당연히 눈앞 보다는 저 먼 곳을 먼저 보아야 하고, 디테일 보다는 전체 윤곽을 먼저 보아야 하며, 당장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감고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역사는 언제나 어두움 속에 시작되어 아침처럼 밝아온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어 보이는 것으로 다가오며, 멀리 떨어져서 보아야 보이는 윤곽에서 시작되어서 비로소 끝날 때쯤 눈앞에 작은 것들이 보일 뿐이다.

개교회주의니, 전체 교회니 하는 말조차가 우스울 뿐이다. 우리가 보아야할 것은 그냥 당연히 정해져있다. 엉뚱히 허우적거리다보면 그냥 역사의 강한 와류에 씻겨가 우리의 모든 수고는 허무한 것이 될 뿐이다. 분명히 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백성들은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잊고 달려만 간다면, 허망한 눈길로 지나간 역사의 폐허 공간 속에서 때늦은 후회만을 하게 될 것이다.

눈을 뜨자.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를 생각하자. 수고하고 애써도 투자의 표가 나지 않고, 메꾸고 메꾸어도 한이 없어 보이고, 사람들의 관심도 없고, 동참도 않는 그런 일이, 언제나 그 시대를 흘러 보내면 그것이 꼭 역사에 필요한 일이었다. 박수 받으려면 할 수 없고, 별로 유익도 되지 않는 일이 내 일이다 생각될 때, 그것이 남는 장사다.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못하면 우리는 조막만한 것밖에 할 수 없다.

“여러 날 후를 바라보며, 식물을 물 위 던지는 기쁨”이 우리의 기쁨일 때, 우리는 영원을 향해 가는 순례자가 될 수 있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책임은 교회의 짐이 아니라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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