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호 교수가 권하는 ‘개화길’ 북촌산책 … “골목마다 품고 있는 역사 만나요”

목회자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가벼운 산책, 그 중에서도 역사와 전통이 숨 쉬는 골목길 걷기를 추천해온 최석호 교수(서울신대 관광경영학과)가 늦가을 산책로로 북촌을 권했다. 최 교수는 “북촌은 ‘개화길’이다. 근대화의 과정과 아픔에서부터 3·1운동의 시작점까지 모두 북촌에서 만나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와 함께 북촌 골목길을 걸으면서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조선 후기의 풍경들을 만나봤다.<편집자 주>

▲ 북촌한옥마을

그동안 알던 북촌은 북촌이 아니었다. 맛집과 카페가 즐비한 도로변 곳곳에 숨은 골목들은 발길을 내딛을 때마다 새로운 세계로 관광객들을 안내했다. 시작은 헌법재판소였다. 안국역 2번 출구로 나와 길을 건너면 헌법재판소가 있는데, 그 안에 숨겨진 보물이 있다. 옛 제중원 터다.
최석호 교수는 “선교사 알렌이 갑신정변 당시 칼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명성황후의 친척 민영익을 서양의술로 살려낸 뒤 짓게 된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이라고 소개했다.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그 옆에는 전국에 여섯 그루밖에 없다는 웅장한 백송이 있다. 다른 소나무들과 달리 기둥이 하얗다. 나이는 무려 600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중국 사신이 들여온 희귀한 백송을 집 안에 심을 정도면 보통 위세를 떨치던 집안이 아니었을 것 같다. 북학파 좌장인 연암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의 집터다.

▲ <북촌 지도> 자료제공=최석호 교수

헌법재판소를 뒤로 하고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북촌박물관이 나온다. 여기서 왼쪽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백인제 가옥이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다. 집의 마지막 소유주였던 외과의사 백인제(백병원 설립자)의 이름을 땄다. 이 집을 지은 한상룡의 이름을 따지 않은 것은 그가 일제강점기에 한성은행 전무를 지낸 대표적 친일파였기 때문이다.

▲ 백인제 가옥

최석호 교수는 “이 집은 전통방식과 일본방식을 조합해 지었다. 문은 한지가 아닌 유리로 되어 있고, 사랑채는 일본식 장마루를 깔았다”며 “전통한옥에서 볼 수 없는 2층이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곳에서 조선총독부 권력자들이 북촌을 내려다보며 연회를 즐겼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백인제의 후손들이 집을 서울시에 기증해, 당시의 모습 그대로를 시민들이 관람할 수 있다.

다시 길을 건너 북촌로8길을 가로질러 가면 끝에 계동감리교회가 나오고, 왼쪽으로 계동길을 따라 올라가면 배렴 가옥에서 화가 배렴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계동길은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낸다. 지금은 상점 주인들의 모습을 흑백으로 출력한 사진들이 가게마다 걸려있어, 계동 전체가 전시관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 중앙고 삼일기념관

계동길의 마지막은 중앙고등학교가 장식한다. 당시 학교 숙직실에서 교장 송진우, 교사 김성수 등이 만세운동을 처음 계획했다. 지금은 3.1기념관으로 복원해 놓았다. 학교이기 때문에 일요일에만 개방한다. 고려대학교와 흡사한 웅장한 학교 외관도 볼거리다.

중앙고등학교를 나와 오른쪽으로 꺾어 걸어가면, 북촌 한옥의 예스런 기와를 바라보는 호사를 누리게 된다. 쉬엄쉬엄 북촌한옥청, 북촌한옥마을을 걷다보면 세종대왕의 스승이었던 맹사성 대감 집터가 나온다. 북촌로5길을 따라가다 정면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면, 정독도서관 담장을 따라 걷게 된다. 정독도서관을 수없이 가봤어도 높다란 담장길을 따라 걷기는 처음이다. 최석호 교수는 “골목길을 찾아 걷는 것의 묘미가 이런 것”이라며 “모르는 길에 처음 발을 디디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풍경에 눈이 뜨인다”고 말했다.

▲ 안동교회

정독도서관 맞은편 송원아트센터를 끼고 오른쪽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윤보선길이 나온다. 윤보선길을 따라 계속 내려가면 왼쪽이 윤보선 대통령 가옥, 오른쪽이 안동교회다. 윤보선 대통령 가옥은 일 년에 한번, 안동교회가 가을 음악회를 열 때 일반인에게 개방한다. 안동교회는 양반마을인 북촌에서 한국인들만으로 시작한 교회로, 3·1운동, 기독교문화운동, 한글운동 등에 앞장섰다. 안동교회를 지나 길을 내려가면 북촌산책을 처음 시작했던 안국역이 다시 보인다.

최석호 교수는 “어디 멀리가야 역사가 보이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 동네에도 전통을 품고 있는 다양한 장소들이 있다”며 “교회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함께 우리 지역과 다른 지역을 돌아보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문화요, 기독교 뿌리 찾기”라고 강조했다.

더 늦기 전에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발걸음을 떼어보면 어떨까. 최석호 교수가 또 추천하는 걷기 좋은 가을 길은 부암동과 창덕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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