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편이 훨씬 많은데 왜 참고 있어야 해?” “이 정도면 밀고 들어가서 뒤집어엎어도 되지 않나?”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개인들이 집단으로 결합할 때는 전혀 다른 경향이 나타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집단 그것도 다수집단의 위치를 확보하게 되면 개인이라는 위치에서는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에너지를 얻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권력이나 물리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된다. 사실 누구라도 저버리기 힘든 매력이다.

교회라고 크게 다르지도 않다. 갈등과 분쟁의 현장을 취재하다 가끔 소름끼칠 때가 있다.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위와 같은 대화들을 듣는 순간이 딱 그런 경우다. 평상시 개개인이 보여주던 신앙적 덕목과 기품들이 당시에는 다 어디로 증발해 버렸을까하는 궁금증마저 인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자신을 대적하는 무리들 앞에 열두 군단도 더 되는 천사들을 부를 수 있는 권세도, 제자 베드로가 뽑아든 검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능력도 내려놓은 채 끝내 십자가의 의를 이루신 주님을 만난다. 스스로를 주류로 인식하면서 상대적 비주류라고 여겨지는 상대들에게 가혹하게 행하는 모습이 만약 우리 안에 있다면 그것이 과연 주님을 본받는 제자의 본분인지 의심해야하지 않을까.

정의로운 교권을 세우는 일은 중차대하다. 반기독교적 사상들을 경계하고 맞서는 것 또한 이 시대의 한국교회가 게을리 할 수 없는 과제이다. 하지만 그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다수의 힘, 혹은 권력의 힘을 지나치게 의지하려 한다면 당장의 승리 확률은 높아질지 몰라도, 진리의 싸움조차 갑질과 횡포로 전락할 위험가능성을 동시에 안게 된다. 우리의 싸움은 어디까지나 진리를 위한, 진리에 의한, 진리의 싸움이어야 한다.

일시적으로 다수의 위치를 점하는 기회를 얻었다 해서 스스로를 주류로 여기는 것은 착시에 불과하다. 세상 어떤 관계도, 그 권세도 무상한 법이다. 더욱이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서 완전하게 회복하기까지 악한 권세와 맞서는 교회는 세상의 주류로 대우받지 못할 것이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예수께서도 지상에서는 평생을 비주류로 사시지 않았던가. 누구 앞에서든 공정하고 진실하며 겸손하자는 다짐이 우리 안에 항상 넘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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