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신문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논단
[논단] 역시 영적 싸움이다조승호 목사(은샘교회)
▲ 조승호 목사(은샘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03총회가 은혜 가운데 마무리 되었다. 변화를 기치로 삼고 총회장과 총회임원들 그리고 각 상비부가 새롭게 출발했다. 이·취임식을 시작으로 발 빠르게 회의록을 채택했을 뿐 아니라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새로운 전진을 이루겠다는 다짐을 도처에서 느낄 수 있었다. 예감이 좋다. 총회가 계속 변화와 개혁, 자정의 노력을 다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총회를 이루어 갈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우리가 한 시도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를 제안하려고 한다.‘역시 영적인 싸움이다!’

교회정치는 영적인 싸움이다

총회정치가 세상의 정치를 따라 해서는 안 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모두 동의할 것이다. 정당(政黨)의 목적은 정권을 잡는데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혼미한 세상정치를 탓할 수 없겠으나, 우리의 정치는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전파 아니겠는가? 하나님께 우리는 이렇게 기도한다.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국민을 겸손하게 섬기게 하옵소서!”

그러면 우리가 장로교 정치를 행할 때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겸손한 자세로 섬겨야 하지 않겠는가? 임원이나 위원 자리가 벼슬이 되고 자신이 힘을 가졌을 때 사적(私的) 이득을 얻고자 한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는가? 사탄이 자리를 내걸고 은밀하게 내 마음속에 집을 짓고, 사탄이 경제적인 이권을 흔들면서 유혹해올 때 우린 이것도 역시 영적싸움임을 볼 수 있어야 하겠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눈이 열렸으면 참 좋겠다.

총신사태도 역시 영적싸움이다

지난 102회기가 진행되는 동안 만나는 이마다 “총신! 이렇게 하면 문제가 풀리는데 왜~” 하고 탄식하는 소리를 숱하게 들어왔다. 그러면서 “당신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고 물어오는 이들에게 그저 입을 다물었다. 악한 자들을 대비해 담장을 잘 쳐서 정관도 고치고 해야겠지만 우리가 총신사태를 에워싸고 언성을 높이는 동안 사탄은 음흉하게 미소 짓고 헤집으며 다녔다.
본인들은 자칭 훌륭하다고 언성을 높였을지라도 총신사태는 역사에 없는 혼란을 겪으며 아무런 해결의 실마리도 풀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이방인 고레스에게 기름 부어 목자라고 호칭하며 택한 백성을 위해 쓰시듯 임시이사를 보내신 게 아니겠는가? 아마도 하나님의 최후 극약처방은 그 사람을 데려가시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우리가 자신의 명예와 이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전파만을 생각하며 행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안에 관계된 각자가 영적으로 눈을 뜨고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하는 영적 싸움이었으나 그 전쟁터에서 우리는 참패했다.

총회정치는 영적인 싸움이다

총회정치 현장에서 몇 가지 성찰이 필요한 영적싸움터가 있다. 어떤 일이든 절차를 준수하는 것이다. 재판 건이든 행정 건이든 모든 과정에는 절차가 있다. 각종 규칙, 규정(정관 운영세칙 등)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준수해야 한다. 누군가 노회에서나 총회본부 또는 위원회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이것을 무시하고 시행했을 때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무효임을 알아야 한다. 해당 회(會)의 규칙을 무시한 어떤 것도 절차상 흠결로 패소하고 말 것이다. 총회임원, 기관장, 상비부와 위원회 임원들, 직원들까지도 규정집을 탐독하고 익힐 필요가 있다. 영적 싸움터에서 알지 못한 연고로 패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재정과 관련된 것으로서 입출금통장, 재정원장, 지출결재를 거친 품의서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재정과 관련한 또 하나는 금회기 회계연도에 보조 받고 헌금 또는 모금한 예산을 집행하고 잔액 0원으로 맞추는 것은 장난과 같다는 것이다. 경험상 모자라거나 남아야 한다. 잔액은 이월시키거나 또는 총회로 반납함이 마땅하다. 여행이나 사업 관련은 공개입찰원칙으로 하되 결정할 때 응찰자를 비밀로 하고, 회원이나 총회에 유리하고 품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정해야 한다.

‘총회재정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어두운 부분이 자정될 수 없을까?’ 하고 고민하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봐왔다. 나 혼자 어떻게 흐린 물을 깨끗하게 할 수 있겠는가 하고 자조할 게 아니라 한 두 사람만 깨어 있어도 자정하는 역사가 시작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총회총대가 빠른 속도로 물갈이 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관행적으로 책임자들 사이에 오고가는 사적 이득이나 특혜를 거부할 자존감이 없는 흑역사의 주역들은 총회의 변화하는 물결에서 반드시 흘러가버리고 말 것이다.

기독신문 ekd@kidok.com

<저작권자 © 기독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