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 목사의 상도동 이야기]

상도동이야기 18번째 글의 제목이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것이었다. 동작구와 상도동에서 삶에 지쳐있는 청년세대들에게 어떻게 주택을 지원하며, 그들에게 어떤 힘을 실어줄지를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목에 힘을 주며 표현했는데, 오늘 글을 쓰면서는 청년들에게 부끄러웠고 또한 그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그때의 제목을 ‘청년들 때문에 나라가 살고 있다’로 과감히 바꾸고자 한다. 글을 쓰면서 하나님께서 한 번 더 청년사역의 기회를 주시면 정말 이렇게 따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도동의 멋진 청년들을 소개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청년들이 이기적이고 자기실속만 채운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그렇지 않는 청년들도 있다. 자기가 몸담고 있는 마을에 관심을 가지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물리적·심리적 공간을 메우고, 이웃들 간에 관계 맺기를 지향하는 청년들이 있다. 소셜벤처(Social Venture:사회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개인 또는 소수의 기업가가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설립한 사회적 기업) ‘블랭크’의 이야기다.

▲ 상도동을 더욱 살만한 동네로 만들고자 젊은이들의 열정을 모은 ‘청춘플랫폼’.

상도동 270번지. 국사봉 산자락에 위치한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마을에 블랭크는 2013년 터를 잡고 공유 공간인 ‘청춘플랫폼’을 열었다. 플랫폼은 본래 기차역의 승강장을 지칭하지만 오늘날에는 더욱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어떠한 계획이나 목적에 따라 사람들이 모이는 장이 형성되면 그것을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청년들이 열었기에 ‘청춘플랫폼’이라 했다.

‘블랭크’의 첫 시도는 함께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나눔부엌’ 프로젝트였다. 나눔부엌에서 말 그대로 먹고 나누다보니 친해졌고, 차츰 청년 창업자를 위한 준비와 도전의 공간으로 확장됐다.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창업을 꿈꾸는 주민들이 자신의 아이템을 갖고 시범 운영을 해보는 요일가게가 열린다. 조각과일 전문점 ‘푸릇푸릇’과 지중해 요리팀 ‘따뜻한 식탁’이 요일가게를 통해 꿈을 키워가고 있다.

30년 된 동네 책방이 폐점 위기에 처했을 때 인테리어 설계를 ‘블랭크’에 의뢰했고 이들은 설계비를 돈으로 받지 않고, 한 달에 자신들이 원하는 책 5권을 3년에 걸쳐 받기로 했다. 상도동의 대륙서점은 이렇게 리모델링을 하고, 동네의 장수가게로서 지금도 주민들의 지식창고 역할을 하고 있다. 참 멋있지 않는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016년부터 인근에 99㎡(30평) 크기의 공유 사무실인 ‘청춘캠프’를 시작했다. 청춘플랫폼을 통해 만난 동네 청년들이 함께 들어와 일하는 공유 사무실인데, 이들이 모여 지역을 살리는 일을 했다. 서로의 재능을 모아 동네 잡지를 3권 만들었다. <상도동 그 청년> <상도동 그 가게> <상도동 그 소설> 등이다. 상도동을 더 매력적인 동네로 만들었다.

‘블랭크’ 김요한 대표의 생각과 말이 걸작이다. “제가 나고 자란 이곳을 사랑합니다. 추억도 많고요. 요즘 이사를 자주 다니고 자취하는 청년이 늘어나면서 이런 기회를 갖기 어려운 것 같아요. 예전엔 잘 몰랐는데 요즘은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지역이 살아날 수 있도록 새 바람을 불어 넣고 싶어요.” 새 바람을 불어넣고 싶다? 그런데 이름이 요한이라.

청춘플랫폼의 로고가 정말 특이했다. ‘청춘’의 자음인 ㅊㅊ과 ‘플랫폼’의 이미지를 결합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손잡고 땅 위에 서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로고의 의미처럼 작은 동네 가게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고백이 멋있어 보였다.

우리는 목에 힘을 주며 손가락으로 그들의 나아갈 미래를 가리키며 걱정했는데 그들은 우리와 달랐다. 목에 힘도 주지 않았고 기성세대를 향해 손가락질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손을 잡아주려고 하고 있다.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너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고 있지 않는가? 교회는 세상에서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동시에, 세상으로 보냄 받은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들의 공동체인데…. 지역을 위한 부름은 우리가 받았는데, 지역을 위한 보냄 역할은 그들이 맡다니! 부끄러운 것을 아는 것은 오히려 감사다. 부끄러운 것을 모른 채 사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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