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포럼 프로그래머>

1993년 스페인 대도시 바르셀로나에서 살던 ‘프리다’는 한 여름의 녹음이 한창 무르익은 카탈루냐 지방의 시골로 이사를 온다. 여섯 살 쯤 돼 보이는 어린 여자 아이 프리다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다. 나와 언제나 함께할 것만 같았던 엄마와 아빠는 없다. 대신 네 살쯤 된 어린 사촌 여동생 ‘안나’와 안나의 부모이자 프리다의 외삼촌인 ‘에스테베’, 외숙모 ‘마르가’가 시골 숲속 외딴집에 살고 있다.

익숙한 모든 것들과 갑작스런 이별 후에 찾아온 프리다의 세상은 아주 혼란스럽다. 살아가려고 어른들은 프리다를 외삼촌 네에 맡겼고, 알 것 같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표현하기에는 프리다는 아직 너무 어리다. 아니, 여섯 살 난 프리다만의 방식으로 잃어버린 세상을 슬퍼하고 이해하고 표현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 어른들도 프리다처럼 여섯 살을 겪었음에도 말이다.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의 ‘카를라 시몬’ 감독이 자신이 겪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아이의 시선과 감정으로 섬세하게 풀어낸 <프리다의 그해 여름>은 2017년 베를린영화제 데뷔작품상부분과 제너레이션 K플러스부분 심사위원들의 어린 시절의 감정을 소환하여 특별언급을 이끌어냈다.
프리다의 새집 외삼촌 네는 숲 속 한가운데 있다. 전에 엄마 아빠와 살던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낯선 공간이고 시간이다. 귀여운 여동생 안나도 있고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외삼촌과 외숙모도 있지만, 엄마는 없다. 그래서 외롭다. 프리다는 지금 어느 때 보다도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

집안 이곳저곳 낯선 공간을 탐험하던 프리다는 집 모퉁이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 밑에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피에타 모형상을 발견 하곤 이내 그곳에서 기도한다. 언젠가부터 그곳에 존재하던 조각상이었지만, 지금 프리다에게는 자기만의 안식의 공간이 된듯하다. 이렇듯 카를라 시몬 감독은 어린 여자 아이의 감정선을 조용하고 차분하게 응시하고 관객은 여기에 호응한다.

외숙모의 차를 타고 도시 병원으로 검진을 나가는 길에 프리다는 차안에서 무엇인가 불편한 듯 팔을 자꾸 긁는다. 무엇이 불편하냐는 외숙모의 물음에 프리다는 괜히 머리 모양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심통을 부린다. 급기야 외숙모가 건네준 머리빗을 보란 듯이 차창 밖으로 던져버린다.

영화에서는 프리다의 엄마가 왜 죽었는지 구체적인 이유는 말하지 않는다. 단지 그 당시에는 흔하지 않은 치료법조차 없던 병이라는 걸, 그것이 나중에 프리다가 친구들과 놀다가 무르팍에 생채기가 나 피를 흘릴 때, 아이들과 부모들의 반응이 프리다를 피하는 듯한 모습을 통하여 에이즈(AIDS)일거라고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시몬 감독은 철저하게 아이의 시각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어린 시절의 감정을 스크린에 투영하게 한다. 그리하여 프리다가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실제로는 외삼촌 부부는 안나만큼 프리다를 사랑하지만, 어린 동생 안나를 질투하여 숲 속 나무에 가두어버리고 모른 체 시치미를 떼는 모습에서 나만을 절대적으로 사랑해주는 엄마의 부재로 인한 프리다의 질투심과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사랑의 갈증, 누구나 한 번 쯤은 겪었을 관객의 어린 시절의 질투심과 공허함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급기야 프리다가 한밤중에 ‘이집은 나를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라고 외치며 집을 나가려하자, 어린 동생 안나는 ‘난 언니를 사랑해’라고 말한다. 그러자 프리다는 자기의 최애 인형인 ‘에스메랄다’를 안나에게 건네고 관객은 따뜻함을 받는다.

자기 전, 외삼촌부부와 안나와 프리다는 침대 위에서 신나게 뒹굴며 베게 싸움을 한다. 모두가 너무나 행복하다. 그러다 갑자기 프리다는 오열한다. 프리다도 안나도 누구도 프리다가 왜 우는지 모른다. 너무 행복한 순간에 엄마가 없어서인지 복잡한, 그러나 쉽게 표현되지 않은 우리가 잊고 지낸 여섯 살 아이의 마음을 우리는 본다. 나는 언니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안나의 사랑을 가족들로부터 받으며 자란 카를로 시몬 감독은 영화로 그 사랑을 다시 관객과 함께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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