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 목사가 들려주는 상도동 이야기]

2년 전 국민드라마가 되었던 <응답하라 1988>에 상도동이 나왔다는 정보를 들었다. 약간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드라마의 배경은 상도동이 아니라 쌍문동 아니었던가? 두 동네를 아무리 연결시키려 해도 감이 잡히질 않았다.

결과적으로 둘 다 옳았다. 극중 배경은 쌍문동인데, 현재 쌍문동에서는 그 시절의 장면을 찍을 수 없기에, 제작진들이 찾은 곳이 바로 상도 2동의 밤골마을 지역이었다. 밤골마을은 1960년대에서 시간이 멈춘 곳이다. 흔히 말하는 전형적 달동네다. 이 동네는 밤나무가 많아 ‘밤골마을’이라고도 불렸고, 조씨 성을 가진 이가 많아 ‘조촌마을’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기억나는가? 주인공들이 ‘둘리슈퍼’에 앉아서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정을 나누기도 하던 그 장면. 1960~70년대에는 그런 동네가게가 각 동네마다 몇 개씩 있었다. TV에서는 ‘둘리슈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밤골상회’다. 호기심에 인터넷에서 밤골상회로 지도검색을 해보니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으로 나왔다. 아니 이건 무슨 일일까? 알고 보니 최근 그 지역에 재개발공사가 시작되어 밤골마을 자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정말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차에 올라 내비게이션으로 ‘밤골상회’를 검색했다. 주소를 한참 찾더니 ‘상도 2동 산 64-104’로 나왔다. 나도 모르게 ‘휴! 그렇지. 사라진 것이 아니지’하는 감사의 마음을 갖고 달려가기를 5분쯤 했다. 숨이 턱하니 막혔다. 분명히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그 장소인데 밤골상회가 없었다. 사진에서 봤던 그 아름다운 동네 정경은 사라지고, 새벽부터 포클레인 소리와 인부들의 모습만 부산했다.

여기가 맞나? 이쪽저쪽 둘러보니 누군가 찾아와서 그려준 몇 개의 벽화만 담벼락에 남아서 반겨줄 뿐이었다. 인부들에게 물었다. “혹시 여기가 밤골상회 자리인가요?” “저희들은 그런 것 잘 모릅니다.” 밤골상회는 ‘그런 것’이 아닌데…. 주소가 ‘산’으로 되어있기에 꼭대기로 더 올라가서 아파트 주민을 만났다. “아마 여기가 그곳이었을 것입니다.” 밤골상회는 ‘아마’가 아닌데….

갑자기 ‘역사의식’이 생겼다. 공사현장과, ‘철거’라는 붉은 글씨가 쓰인 담벼락과, 더 이상 사람들이 손길이 닿지 않아 우거진 잡초들을 핸드폰에 담았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다. 그러고 나서 필자는 목양실로 돌아와 직접 눈으로 확인한 밤골마을에 대해서 글을 쓰는 중이다. 사라진 동네, 하지만 많은 주민들의 기쁨과 슬픔을 다 품었던 그곳을 나 한사람이라도 기억하고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한 채에 수십억 하는 바로 옆이 그 달동네였다. 필자도 같은 상도동 하늘아래 살았건만 밤골마을과 밤골상회를 전혀 몰랐다. 이 글을 쓰지 않았다면 평생 기억에 없었을 것이다. 누가 그랬다. 기억보다 기록이 강하다고.

사람들에게는 늘 두 마음이 동시에 존재한다. 엣 것을 지키려고 하면서, 동시에 새 것을 추구하는 마음이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좋은가’라고 묻는다면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재개발’ ‘새로운 도시’ ‘부흥’ ‘성장’도 틀린 말이나 나쁜 말이 아니다. 다만 옛 것을 간직하려 하는 그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잊지 않으려면 기록해야 한다.

▲ 이젠 사진 속 추억으로만 남은 밤골상회의 옛 모습.

밤골마을을 다녀오며 못내 아쉬운 게 있었다. 그곳에 살다 떠난 주민들이 시간이 지난 뒤 자녀들의 손을 잡고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고, 이곳을 방문했던 관광객들도 옛 기억이 새로워 다시 찾을 수도 있기에 플래카드에 밤골마을 사진하나 넣고 ‘우리는 이곳에 있었던 밤골마을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라는 뻔한 글귀쯤이라도 남겨두었다면 좋았을 덴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도 조금 지나면 과거가 된다. 우리 역시 개발과 성장 같은 데만 몰두하다가 과거의 소중한 기억과 축복 같은 것들을 놓치며 사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반성해본다. 운전할 때는 앞을 보는 것이 중요하지만, 주차할 때는 뒤를 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필자는 목회의 초심을 잊지 않으려고 교회 시니어카페에 상도제일교회 초창기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걸어놓았다. 그리고 이렇게 적었다. ‘역사(History)는 그의(His) 스토리(story)다.’ 58년 상도제일교회 역사 또한 하나님께서 이루신 역사인 동시에 수많은 성도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과거를 덮는 것은 현재를 덮는 것이다.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밤골상회!’ ‘응답하라 조국교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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